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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 샤먼의 방식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1.<수정-2021.11.23>

 

고대로부터 샤먼이 필요했다.

지각과 감각으로 알아챌 수 없어 간절하게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을 불러내고, 현현하는 샤먼.

 

젊다는 것이 죄인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시절.

무고한 죄인으로 죽어 이름을 뺏긴 채 묻힌 이들이 지천이었던 그곳.

그곳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이야기로 풀어내며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들은 분명 샤먼이기에 충분했다.

 

 

2.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함께 투명해지는 얼굴로 그는 그만큼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고무신은 낮게 가라앉아가는 그를 세월의 강에서 버티게 하는 배 같았고, 삿대처럼 가는 지팡이가 시간의 물살을 가늠하는 듯 보였다.

아흔두 살의 강흐른잎은 그의 이름처럼 물결 위로 내려앉아 가볍게 흐름을 타는 잎사귀같이 가벼워져 있었다.

고래실 흙뜻면 대내골의 최고령자. 학교라고는 가본 적도 없이 고용살이 아니면 농사짓기로 큰 산 그늘 벗어난 적 없이 산을 짊어지기라도 한 듯 허리가 굽어갔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무렵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겠다고 찾아온 이들 앞에서 그는 잠시 산신령마냥 길어난 눈썹을 꿈쩍거리며 시간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 같았다. 녹화 장치들을 설치하고 한참을 부산하게 점검하던 연구원은 금세 표정을 바꾸고 의외의 높은 톤으로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이 자기만의 비결이라도 되는지, 노인의 막냇자식처럼 허물없는 말투로 구술할 시간의 조정을 거든다.

 

흙뜻면은 큰 산으로 알려진 딴슬기산자락 아래 마을인데도, 들이 꽤 너르네요. 저기 보이는 강이 모래가람이죠? 산 아래 마을에서부터 모래가람 사이까지 펼쳐진 들녘이 풍요로워 보입니다. 대내골은 참 살기 좋은 곳 같습니다.

웬걸. 옛말에 산불근, 물불근, 읍불근이라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지. 큰 산 아래 살아서 신령함을 닮아 불의를 못 참았던 젊은이들 골짜기에 묻혔어. 큰 강 불어나면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갱변 모래톱에 묻혀 백골도 남기지 못했고. 잘나고 야문 사람들은 읍내로 나갔다가 본보기로 효수당해 내걸렸지.

 

그 시절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 마을 젊은이들은 꽤 용기 있는 행동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지. 큰물결골 3·1사건 일어났던 것이 몇 년인가 모르겠그만. 1947년 3월 1일? 그래, 나 19살 때 일이라. 해방 후에 그 사상 가진 사람들이 따끔따끔할 때라.

그때는 흙뜻면 지서가 저기 다리 건너 거기에 있었잖아. 지서가 그 위에 있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가 지금의 푸른말회관 자리에 있었고. 면사무소는 원래 큰물결골에 있다가 일제 때는 술도가 집 앞에 양옥 2층으로 되어있었어. 그다음에는 지금 있는 면사무소 자리에 있었어. 그런데 무자년난 때 면사무소에 불을 대 버렸어. 그래 그걸 다시 지었지.

큰물결골 만세사건은 무자년난 일어나기 이전이라. 사상이 있는 사람들이 각 마을에 다니면서 무식 대중들을 선동시키고 그랬는데, 3·1절에 다 같이 만세를 부르자고들 했나 봐. 큰물결골 평전이라고, 거기가 밭이 많고 편편한 곳이지. 그 넓은 뜰에서 만세를 부르자고 큰물결골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다 출동했대.

3·1절을 기념해서 아녀자랑 학생까지 모다 만세운동 기린다는 의미로, 평전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여 농로로 해서 흙뜻국민학교로 모이려고 오는 길이었어. 만주슈리골에서도 양민들이 약속이 되어서 모다 합류하려고 했지.

그런데 만나보도 못하고 끝나버렸지. 학교 오기도 전에 지서에서 해산 명령을 내리고, 해산 안 하니 그냥 총을 발포했어. 그렇게 사단이 일어나버리니까 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해산해버리고 그걸로 끝마쳐버린 거야.

그때 꽤 많이 죽었을 것이구만. 그때가 대통령 없을 때야. 동원되고 가담된 사람도 많이 잡혀가고, 보리밭 길, 거기에서 바로 죽은 이도 많았지.

 

강흐른잎은 딱 그만큼만 말한다. 그가 듣고 아는 것까지만.

그리고 듣는 이도 그가 아는 어떤 것을 알아야만 말을 이어갔다.

그가 살아낸 공간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고서는 당시의 이야기를 풀 수 없다 여기는 식으로.

개들이 살점 붙은 뼈를 물고 다니던 양쟁이 갱변,

그곳에서 총에 맞아 푹푹 쓰러지던 이들의 이름을 강흐른잎은 꼭꼭 짚어가며 불러댄다. 그들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동원하며 그 살아생전 생김새까지 떠올리게 한 다음에야 그들이 겪었던 일의 실마리를 풀었다.

 

무자년 10월에 군인들이 이 대내골로도 들어왔어요?

하, 왔지, 아믄. 말할 것도 없이 군인들이 말도 못 하게 왔어.

처음에는 고운물군 그 일어선연대 군인들이 여기로 왔지. 듣던 말에 고운물군 일어선연대가 나라님 명령이 잘못됐다고 들고 일어나 고운물군, 순한하늘군, 너른햇살군 어디 어디를 습격하고 고래실로 와서 습격한 다음이라며, 우리 마을로 진출했어. 만주슈리골 쪽으로 해서.

지금 만주슈리골로 올라가는 길이 아니고, 예전에는 그리 길이 없고, 이쪽 농로, 초로 길로, 요 밑으로 걸어다녔으니 우리 마을을 지나서 만주슈리골로 가야 했어.

일어선연대 군인들이 여기서 잔 일은 없지 아마. 그날 왔다가 저녁에 만주슈리골로 들어갔는가 보구만. 짐 지고 가는 사람들 많았지. 이 동네 사람들을 집합을 시켜서 군인들이 챙겨온 짐을 지어다 달랬지. 저기 만주슈리 분교가 있었거든. 지금은 없어. 군인들이 사람들을 그 학교로 전부 집합을 시켰어. 짐 같은 것도 전부 다 그리 이동을 시켰지.

이보름달개, 그분이 주동해서 일어선연대를 맞이했어. 김땅여름, 이보름달개, 정큰기개 씨가 주동자라. 정귀한나무, 정무른속 그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지. 꼭 해야 한다니까 따랐지.

그 사람들이 지금으로 따지자면 다 100살 넘었그만. 이보름달개 씨는 그때 30살 그 정도로 봐야지. 결혼도 해서 자식이 있었고, 그 후손들도 있어. 후손들이 서울에 가서 살고 그래. 정무른속 그런 사람 자손들도.

그때 나선 젊은 사람들도 큰물결골 만세운동에 영향을 받았겠지. 그때만 해도 마을이 사람 사는 것 마냥 아침부터 청년들이 마을 청소를 한다, 야학을 한다 들썩들썩했지.

나중 인공시절에 보름달개 씨가 흙뜻면 당위원장을 했어. 정큰기개 씨는 순천군당위원장을 했지. 정큰기개가 더 크지. 그 사람 여동생이 여기 아래대내골에 살아있어. 정큰기개 씨는 어떻게 죽었다는 것이 안 나왔어.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 소문만 무성했지 끝까지 어찌 죽었나 알려지지 않았어. 야문 사람이야.

 

과장된 어조나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마태복음 1장처럼 누가 누구 손이고, 누구와 누구가 일가를 이뤘는지 수많은 이름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대내골에 적을 두었던 집안들의 계보가 그려졌고, 그 계보들은 종으로 횡으로 가지를 쳐가며 얽히고 설켜갔다. 함께 산 사람들에게만 확연하게 그려질 수 있는 뿌리의 형상들이.

직접 경험한 사람이 지니는 진정성의 후광이라는 것이 그의 센 머리카락 주변으로 달무리같이 번지고 있었다.

 <다음회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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