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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 샤먼의 방식 -3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3.<수정-2021.11.23>

큰물결골에서 열다섯의 나이로 그 보리밭 길을 행진하던 소년이었던 이들의 증언은 결이 다르다.

큰물결골 양글돌의 눈빛은 낯선 이를 향한 노인 특유의 경계심과 노인답지 않은 호기심이 섞여 있다. 85살의 노인회장이란 원래 다 이렇다는 듯이 따글따글한 밤톨 인상으로 말투마저 주저함 없이 톡톡 떨어진다.

양글돌 곁에는 호리호리한 몸피에 서글하게 미소를 흘리며 동갑내기 친구 이봄따름이 따른다. 그는 넌지시 할 말이 있다는 듯 눈을 마주치는 습관이 있었고, 언제라도 상대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을 해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오래된 코미디의 콤비처럼 두 사람은 둘로 있어서 85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야물딱지거나 춘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양글돌이 두 발이 들리게 소파 깊숙이 몸을 밀어 넣어 등받이와 팔걸이 전체에 몸을 맡겨 뒤로 젖혀 앉는다. 옆 소파에서 이봄따름은 오른편으로 몸을 틀어 반가부좌 다리 모양새를 한 채 양글돌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양글돌은 동네 사람들이 피를 튀기며 총에 맞아 쓰러지는 이야기를 할 때도 풀어지지 않았고, 이봄따름은 자신이 총알을 피해 도망치던 장면에서도 얼굴 주름에 고인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15살 때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실까요?

우리가 그때까지 흙뜻국민학교에 다녔어. 사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용해. 연락병 역할을 시킨단 말이여. 우리는 학생이니까 경찰들이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삐라 같은 것을 붙이라고 시키고, 밤으로는 노래도 가르치고 그랬단 말이여. 무자년난 전부터. 그러다 무자년난 일어난 뒤부터는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접근 못했지.

 

연락병을 할 정도였으면 그때도 꽤 야문 소년이셨나 봅니다. 함께 했던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 사건이 1947년 3월 1일에 일어났지. 이 마을에 살던 이가른뿌리란 청년이 주동이 되고, 대내골 사는 박먼뜻이라는 흙뜻국민학교 교사도 나섰지.

그분들이 3월 1일 날 아침 일찍 종이를 말아서 메가폰처럼 입에 대고 골목골목 다니면서 오늘은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이 또다시 해방되기 위한 날이다. 그러니 밥을 자시고, 묫동거리, 바로 이 마을회관 앞에 있는 묘 봤지? 이 묘가 한 3백 년 되었는데, 이 묘 주변에 아직도 너른 터가 있잖아. 여기를 묫동거리라 했어. 이 앞으로 모이라고 했지. 그래서 동네 사람들 다 모였어. 젊은 부인들은 애를 업고, 우리들도 학교도 안 가고,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온 동네 사람들 모인 거지.

 

샤먼은 이야기 속에서 그날의 여린 보릿잎과 쑥잎들 사이에서 한 명 한 명을 불러낸다.

 

“애국 흙뜻 주민 여러분! 아침밥들 지어 자시고, 다들 묫동거리로 모이시라!”

선생을 따라 골목골목 뛰어다니며 손나팔을 하고 외쳐대는 글돌이와 봄따름이 보인다.

초봄 아침 쌀쌀한 기운에도 동네 조무래기들을 대동해 기운차게 외치던 소년들.

묫동거리에서 모인 애 들쳐업은 아낙들, 어깨동무한 까까머리 학생들이 좁은 논둑길 지나 푸릇한 보리밭길 따라 학교로 향하고.

아지랑이 사이로 흰옷 입은 이들이 긴 띠처럼 가물거린다.

앞서간 선생이 뭐라고 외치기라도 하면 소년들은 신이 나서 ‘해방 만세!’라는 말만 반복하며 울긋불긋 깃발들을 힘차게 흔들어 댄다.

하얗게 줄지어 가는 그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흰옷들의 행렬은 마치 월계수 잎을 흔들면서 예수를 뒤따르며 새로운 해방의 세상을 맞으러 가는 것 같다.

해방 만세!

 

 

앞에서 경찰관이 딱 가로막아. 무장한 경찰들이 일개 소대는 돼. 한 삼십 명쯤. 그 밑에 흙뜻면 지서가 있었어. 그 자리에 지서가 있으니까 그 앞으로 안 가고 일부로 뒷길로 피해서 학교로 가려고 한 거지. 경찰이 앞을 딱 가로막으니까 앞으로 전진 못 하고 다 저 뒷사람까지 멈췄는데. 그 책임자 경찰관이 경위라. 그 경위가 앞에 나와서 여러분들 가지 말고 다 해산하시오. 안 그러면 발사합니다. 여기서 돌아가시면 그대로 놔둘 테니 돌아가시오.

그러니 이가른뿌리 그분하고 박먼뜻 선생하고 두 분이 앞에 나서서 ‘우리는 오늘 해방을 찾기 위해서 모이기로 했다. 그러니 우리가 모이러 가는 길을 막지 말라.’ 그러면서 버텼어.

책임자 경위가 공포를 한 발 쐈어. 공중에 대고 권총을 한 발 펑 쏘니까 뱅 둘러서 엎드려 총을 겨누고 있던 경찰관들이 일제히 발사했어. 그 주위가 바위, 돌이 많은데 전부 그 뒤에 숨어서 쏘는 것이라.

 

아기 업은 아낙들이 두 선생 앞을 가로 막아선다. 일본 순사들도 아닌데 설마 이래도 총을 쏘겠느냐 싶었을 것이다.

보리밭에 듬성듬성 자리한 고인돌 뒤에도 길가 큰바위 뒤에서도 불꽃을 튀기며 총알이 날아온다. 흰옷들을 향해. 아낙들의 용한 생각들은 아무 소용도 없이 그녀들이 제일 먼저 쓰러진다. 그래도 뒤를 보이지 않은 채 정면으로 총알을 맞는 건 업은 자식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까까머리들도 풀썩. 마른 흙먼지 이는 냄새와 화약내가 이내 비릿한 피 냄새를 풀어냈고,그것들은 이내 여린 쑥 냄새와 섞인다.

 

 

나는 그때 난생 처음 총소리를 들었어. 다르르르 총을 쏘는데 총소리가 똑 콩 볶듯이 튀기드만. 사람 죽는 것도 처음 봤그만.

 

애 업은 부인도 있고, 소년도 있었다면서요?

하, 만세만 자꾸 불렀지. 내용도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우리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뭉쳤어. 나는 총소리 나니까 무조건 엎드렸는데, 총소리가 좀 덜 나기에 살짝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총 맞은 양반들이 쓰러져 있었어. 그래서 거기서 23명인가가 죽었거든. 그러니 총 맞은 사람들은 몇 사람이나 되었겠소? 죽은 사람만 23명인디. 부상당한 사람들은 또 몇이었겠으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그런 전쟁 영화들이 나온 모양이다.

양글돌의 증언은 생생하다. 어쩌면 그의 말들은 그가 본 영상들을 통해 그 자신을 그 안에 다시 집어넣고 각색해 재현시키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15살 소년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보리밭길에서 귓가를 스치는 총탄을 경험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울리지 않은 큰 소파가 있는 마을회관 남자 방 안으로 순식간에 바위에 튕기는 총탄이 내는 이물스러운 소리와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며 엉겨붙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비명이 낭자해진다.

 

나는 임다섯기둥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어요. 나랑 어깨동무하고 있었는데 다섯기둥이 거기서 톡 떨어진단 말이요. 학교를 같이 다니고, 공부도 잘하고 그랬는데 그 친구가 톡 떨어져 버린 걸 봤어요. 그때야 뒤를 돌아보니 다들 쓰러져 있어. 소년들이, 내 친구 임다섯기둥, 임빛날글 등이 그때 죽었어요.

 

영화를 관람하며 몰입하다가 순간 등장인물에 감화된 관객이라도 되듯이 이봄따름이 불쑥 끼어든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어깨동무, 소년이나 친구라는 말이 맑아서 그 장면과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그의 한마디는 더 비극적인 이미지로 굳어진다.

 

큰물결골 마을 분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이분들도 이상주의를 하도 선전하니까 혹했지. 그때는 다 어렵게 살았으니 그런 말들에 아무래도 동조를 했지.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사람들이 잘살 수가 없는 시대라. 그런 시대에 누구나 똑같이 잘 살 수 있다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쪽으로 동조를 했지 않았겠어? 좀 깨어나려고 했다고도 볼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많이 맞았지.

47년 여름쯤인가? 그 반대편이었던 고래실대한청년회, 계몽단에서도 우리 좋은주의로 계도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모이라 했어. 고래실청년단장이 김너른 씨라는 분이 있어. 그분이 나이가 많아서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나서서 회관으로 마을 청년들을 집결시켜서 좌담회를 시작하려고 했어. 그런데 마을 청년들이 오히려 그 강사들을 데려다 죽게 구타를 했단 말이요. 그래서 같이 수행한 사람이랑 김너른 씨 그분하고 두 사람이 죽을 만큼 맞고는 도망가다가 미처 도망을 못 가고, 저 삼밭에 숨었어. 삼 키가 쑥 자랐던 초여름이었나 싶구만. 그래서 겨우 살아서 도망갔는데 그 후에 후환이 문제라.

그다음 날 경찰을 비롯해 청년단들이 온 동네에 쫙 깔렸어. 젊은 사람만 있으면 잡아다 족치는 거라. 거기 참석을 했든 안 했든 젊은 사람들은 다 잡혀서 뚜드려 맞았지. 온 동네 젊은 사람들이라면, 18세가 못 되는 소년도 키가 좀 크고 그러면 잡히고, 그 이상 청년들이 동네 회관으로 끌려가서 뚜드려 맞았어. 죄가 있으면 경찰관이 끌고 갈 것인데, 누가 뭔 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한청이 우선 앞에 와서 그렇게 쑤셔대고 다니는데…….

그때 전푸른샘 씨라고 면장을 하셨던 분이 그 당시에는 흙뜻면 청년단장을 했어. 그 사람이 고래실에서 나온 청년단 그 사람들을 무마시키려고, 자기 사재를 털어서 돼지를 잡아 대접해서 무마시켜 어렵게 넘어가고 했어요.

 

키가 큰 이봄따름도 역시 그 현장에 있었다.

 

그때 나도 회관에서 빤스만 입고 꿇어앉아서 엄청 떨었단께. 어찌나 춥고 무섭던지. 그때가 삼이 그렇게 자란 때가 맞는가?

 

역시 관람하던 영화의 주인공이 의연하게 고난을 겪어내는 장면에 동참하고 있는 꼴을 하며 한자락 거든다.

 

밀봉되어 매장되었던 이름들이 호명되고, 그들의 삶이 신들의 본풀이처럼 풀어진다. 어설픈 식자들이 핏대 올리며 설명하려 했던 거대사에 묻혀 저만치 물러나 있던 이들이, 각각의 이름과 얼굴로 되살아난다.

젊었던 이들의 죽음으로 끝맺음한 열전은 마치 신화나 전설처럼 잊어서는 안 될, 기억하고 전해야 할 어떤 정수로 갈무리되고 있다.

<다음회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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