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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 샤먼의 방식 4~5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4.<수정-2021.11.23>

동생과 나이 차가 많이 나서 38살이었던 강흐른잎의 큰형 강빛난귀퉁이. 겨우 언문이나 깨우친 그는 시키는 대로 마을 한청 단장을 했다. 낮에는 경찰 하라는 대로 따랐지만, 밤이면 내려오는 산사람들의 말을 거역할 배짱도 없었던 사람.

1949년 어느 날 밤, 산사람들 짐을 지고 딴슬기산을 탔다가 이슬 맞고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음력 4월 13일 밤늦게 고래실경찰서로 불려갔다가 다음날 양쟁이 갱물 언저리에서 총살당했다. 양쟁이 갱물가 어느 지점인지 딱 짚을 수 없는 그 모래톱에서 이뤄진 집단학살로 인한 죽음이었다.

강빛난귀퉁이는 결혼하고서도 손이 귀했던지 자식 한 명 남기지 못한 채였다.

양글돌의 매형인 박삼나무머리는 모래가람 너머 가락마을에 살고 있었다. 1948년 12월경에 산사람들이 민예청에 가입하라고 하는 바람에 피비린내 나는 광풍을 피해 보자고 처가로 숨어들어 일주일가량을 머물렀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경찰에게 잡혀간 후 흙뜻면 큰물결골 아홉골로 끌려가 총살당하고 암매장되었다. 박삼나무머리의 3살 아들과 남겨진 부인, 24살의 양글돌의 누이는 아홉골 꽁꽁 언 땅을 파헤쳐 아홉 구의 시신 중 남편의 차디찬 몸을 수습했다. 박삼나무머리의 죽음은 숨겨졌고, 1965년에야 사망신고가 이뤄졌다.

 

5.

어떻든지 그때 사람들은 젊은 것이 아주 후회라. 반란군도 오면 젊은 사람 찾지, 경찰도 오면 젊은 사람 찾지. 그러니 어찌 되었든 젊었다는 것이…….

 

젊다는 것이 죄가 된 시절.

젊은 그들에게 여기서도 저기서도 죽음의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그 이유는 합법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인간적인 기준과는 어긋난 것들이었지만, 그저 그것들 때문에 젊은 남자들이 죄인으로 죽었다. 그리고 망각이 강요되었다.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들이란 절대 잊히지 않는다.

흙으로 돌아갔을 이들이 틔워낸 독초들, 남겨진 이들의 혈관 속에 켜켜이 쌓여 가슴에 멍울로 맺힌 독기를 살풀이하듯 풀어내야 할 터인데…….

밀실에 숨겨둔 것이란, 언제든지 다시 세상에 어둠을 드리우며 활개를 칠 날이 생긴다. 언제든 스멀스멀 되살아나서 누구라도 죽음의 재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실체를 분명히 알려야 한다.

 

흙뜻면의 샤먼들은 무고하게 죽은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호명해 우리 앞에 불러내면서, 어둠의 실체를 밝히고 있다. 그들의 말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고유명사만이 경전을 채울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죄인으로 죽은 젊은이들이 무슨 사상을 가졌는지, 어떤 사건에 휩쓸렸고, 어쩌다 죽음으로 내몰렸는지에 대해서는 일부의 소임을 받은 이들이 기억할 일이다.

샤먼은 다만 그들의 기억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고유한 이름을 가진 각각의 존재 자체를 신성한 계명으로 삼아 현현해 낸다. 그 이름들이 품은 것들을 압축해 단순화한 주문을 알려주며 믿음을 요구한다. 살아낸 시간의 깊이로 벼려내어 앞날을 인도할 지혜로 삼을 것들에 대해.

 

샤먼을 추종하는 것처럼 굴던 연구자는 사실은 누구보다 먼저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을 부정하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연구자의 일을 한다. 명치 끝에서부터 차오르는 한숨을 수시로 내뱉으며, 종종 맥락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일을.

샤먼은 홍안의 젊은이 이름을 부르는 데 집중하지만, 연구자는 그들이 무슨 무기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사체는 누가 목격했는지, 시신은 어떻게 수습되었는지까지, 심지어 이장할 때 유골은 어떤 상태였는지까지도 묻는다. 샤먼이 될 수 없는 연구자는 그 푸르른 이름들을 구타, 척살, 총살 같은 차가운 명사로, 시뻘건 혈흔이나 푸르죽죽하니 굳어버린 몸, 혹은 그 몸에 뻥 뚫린 총상 자국, 부패의 냄새로 기록해야 했다.

그리고 깊은 밤 가위에 눌려 진땀을 흘리다 깨어나서는 또다시 그 죽음 체험을 반복할까봐 더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언제라도 문을 열고 생사를 확인해 줄 이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한다.

 

※ 본 내용은 사실적 역사 판단의 자료나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송은정 작가>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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