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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는 어떤 축제인가



 

이충무공과 거북선, 조선 수군 영령 기리는 역사 축제

 

전 시민이 길거리로… “얼싸 더리덜라” 소리 지르며 호국 기상 표출

 

 

 

진남제는 자랑스런 여수인들의 대동놀이

 

여수에는 한해 10여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그러나 그중에서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은 보다 각별하다. 다른 축제는 그냥 이벤트성이라면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는 시민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이 묻어있다.

 

모든 시민들이 함께 함성을 외치며 400여년 전, 조국을 구해냈던 선조들의 자랑스런 기상을 되새긴다. 수많은 학생들이 ‘소동줄’을 들고 “얼싸 더리덜라”를 외치며 시내를 활보한다.

 

모든 식당, 상가에는 청사초롱이 매달리고, 이날 만큼은 내것 네것이 없을 정도로 서로 나누고 기뻐한다.

 

시민 모두가 나라를 지켜낸 여수 출신의 수군(임란당시 전라좌수영 수군은 여수출신이 많았음)들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 한다.

 

이러한 의식 때문에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의 전야제에는 대부분의 여수시민이 참가한다.

 

4,300명의 인원과 41점의 가장물이 펼치는 이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보통 4-5만명이 몰려든다.

 

지금은 각종 축제에 불꽃놀이가 자주 등장하지만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여수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축제는 유일하게 진남제였다.

 

 

 

67년부터 개최된 전통있는 호국축제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는 1967년 5월 5일 <제1회 전라좌수영 진남제>라는 명칭으로 처음 개최됐다. 당시에는 민간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관(官)이 주도한 행사였다.

 

 그러다 1975년 제 9회 행사부터 민간이 축제를 주도했다. 1979년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진남제전보존회>가 설립돼 문화공보부장관의 승인을 얻었다.

 

<사단법인 진남제전보존회>는 1983년에 임진란 호국수군 위령탑을 건립하는 등 단순한 축제보존의 일을 뛰어 넘어 임란을 재조명하는 포괄적인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1988년 제 22회 행사부터는 축제 개최일을 이순신 장군이 여수에서 처음으로 옥포해전에 출전한 5월 4일로 변경했다.

 

1995년에는 <진남제>가 문화체육부 지원 4대 축제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전국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벤트성 축제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가 2004년 명칭을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로 바꾸고, 재도약을 시도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순신장군 첫 출전일 기념한 날

 

<진남제 여수거북선축제>가 매년 5월 4일에 열리는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부산성 등 영남지역이 모두 함락 당하자,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 장군이 1592년 5월 4일 거북선을 이끌고 전라좌수영(지금의 전남 여수시)에서 첫 출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당시 거처했던 곳이 지금의 <진남관(국보 제 304호)>이 있는 자리다.

 

전라좌수영 본영이었던 <진남관>은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죽고 나서 만들어졌다.

 

이순신 장군이 있던 당시에는 이곳에 <진해루>라는 목조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진해루>에서 작전회의를 이끌었으며 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전략도 이곳에서 수립했다.

 

 

 

‘역사의 아이러니’ 한국 여수-일본 가라쓰시 자매결연

 

 

방어의 땅 ‘진남(鎭南)’ 한국 여수의 진남제

 

 

1592년 일본 큐슈지방에 있는 가라쓰시 나고야 성에는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21만명의 무사들이 조선 침략을 위한 출정을 감행했다.

 

침략군의 중심에는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있었다. 일본은 수많은  영주들이 각자의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100년간의 내란을 종식시키고 이를 통일한 인물이 도요토미히데요시다.

 

도요토미히데요시는 불평세력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조선 침략을 감행한다.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을 함락한 왜군은 18일 만인 5월 2일 수도인 한성까지 점령한다.

 

패전 소식만 들려오던 이 때, 거북선과 조선수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선 장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순신.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은 5월 4일, 전라도 여수에서 첫 출전에 나선다.

 

3일 후인 5월 7일, 거제 옥포해역에서 일본함대를 격파하고, 5월 29일에는 사천에서, 7월 8일에는 통영 한산도에서, 9월에는 부산포에서, 이듬해인 1593년 3월에는 경남 고성 당항포에서 왜군을 소탕한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일본 수군 대파하고 전사할 때까지 23전 23승이라는 승리의 전사를 만들어 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출정했던 곳이 바로 가라쓰시 진서정(鎭西町-서쪽을 제압하라 즉 조선을 침략하라는 뜻)에 있는 나고야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수와 가라쓰시는 국제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한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침략의 전진기지와 그 침략을 막아낸 도시가 손을 잡은 셈이다.

 

더 아이러니 한 것은 가라쓰시에 진서정이 있다면 여수에는 진남관(鎭南-남쪽을 제압하라 즉 왜구를 무찔러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침략의 땅 ‘진서(鎭西)’ 일본 가라쓰시 쿤치

 

가라쓰시는 매년 ‘쿤치’라는 축제를 연다.

 

 그런데 이 축제 또한 진남제와 매우 유사하다.

 

진남제가 국내 최대의 가장행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쿤치’ 또한 14개의 가장물이 등장한다.

 

이 가장물을 끌기 위해 가라쓰시 내 모든 학교는 이날 휴교다. 이 가장행렬을 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50만명이 몰려들 정도다.

 

두 축제 모두 호국축제다. 다만 진남제는 올해로 39회째이며 쿤치는 414회째를 맞는다.

 

쿤치의 제 1회 축제는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해부터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침략의 날에 일본군의 기상을 축제에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진남제는 방어와 승리의 날을 기념하는 더 큰 호국축제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취재팀  webmaster@yeosu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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