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유군 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이제 우리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는 변화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대통령 언명의 배경에 대하여 “한국이 한.미.일 남방(南方) 3각 동맹의 한축을 담당했던 동북아 질서는 냉전시대에 만들어졌던 것”이라며 “우리가 언제까지 그 틀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 발언의 실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이 파장은 지난 8일 공사졸업식에서 ‘노무현 독트린’이라는 “주한 미군의 동북아 투입 반대 선언”보다 훨씬 큰 것이다.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한다’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동북아 세력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말을 동북아 국제현실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한국은 한편에는 미국과 일본, 반대편에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어느 쪽에도 갇혀 있지 않을 것이며 사안별로 협력할 진영을 선택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50년간 우리의 생존 기반으로 삼았던 한.미.일 3각 안보체제로부터 사실상 이탈하겠다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 그리고 실질적인 세계 2위 강국인 중국 등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은 우리 실력만으로는 상대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국력이 크게 성장한 것을 내세워 휴화산 속의 화산지대에서 마치 한국이 결정적 역할인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할 것이다.

“누구 편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우리 선택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 판도는 변화할 것” 등등의 말은 얼핏 들으면 한없이 뿌듯한 얘기이나 냉정하게 음미하면 한국을 둘러싼 남방 3각 동맹국과 북방 3각 동맹국들에게 어떤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할지를 일러주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영국이 균형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프랑스와 독일을 능가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능가하는 힘을 키우거나 아니면 초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을 일.미 동맹에 능가하는 동북아의 안정과 균형을 이루어졌을 때라야 한다.

지금 국제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흔들림의 강도가 심상치 않다. 큰일은 우리 국민의 불감증이다. 지진의 충격파가 무섭게 밀려오고 있는데 무감각하고 무념하다.

우리는 현재 전근대적 구식정치­측정기로 21세기의 지진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변화하는 한.미관계, 한.일관계, 북핵문제를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풀어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되풀이 하고 있다.

지난 20일 노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과 면담하면서 현안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스장관은 노대통령의 강의를 듣기만 했다는 보도다.

라이스장관은 국제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들었을까? 그는 21세기의 애치슨이 되겠다며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21세기 애치슨라인인 라이스서클을 선언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를 자유민주주의 동맹, 자유민주주의 전환과도국, 폭정전초기지라는 세계의 자유의 동심원(同心圓)으로 다시 짜보려는 외교 노력을 세기사적 노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의 동심원 지진파는 이미 동북아에 밀어닥치고 있다.
21세기 중국의 부상을 불안하게 느끼고 있는 일본은 발빠르게 자유의 동심원 핵심 서클에 가입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계속하기 위해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려는 화평굴기(和平堀起)를 강조하고 있으며 북한은 동심원의 주변 서클로 분류돼 있는 것 같다.

라이스의 동북아 자유의 동심원이 그려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독도와 교과서 왜곡 문제를 포함한 역사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단호하게 대응하고 국제여론과 일본국민들을 설득해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노대통령은 23일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은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격문이였다.
일제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 등 외교전쟁을 각오한 패권주의적 역사 왜곡을 뿌리 뽑겠다고 외교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끝으로 현재와 같이 한.미관계, 한.일관계, 북핵문제를 시대착오적으로 대응해 나가려면 21세기 한반도는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소외자로 전락할 위험이 적지 않다. 고로 한.미동맹에 기반한 중추적 동반자 외교를 구사하여 남방 3각 대­북방 3각 논쟁과 상관없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전략적 진취성을 끌고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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