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2000년 5월 31일’ 절대 잊지 못할 그 날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따르릉~ 따르릉~~~~>
‘이 밤중에 무슨 전화야?’하며 짜증스럽게 시계를 보았고 이윽고 전화를 받는 엄마 목소리에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지은아! 지은아!”
잠의 끝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순간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지은아, 할아버지께서 방금 돌아가셨단다. 할아버지가…….”
엄마도 울고 저도 울고 아빠 회사에 연락해 큰댁으로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평소 세 시간이 걸리던 거리였지만 속력을 내어 두 시간이 채 못 되어서 도착했습니다. 큰집도 역시나 통곡 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부지 이렇게는 못 간다. 우리 아부지 살려내…….”
고모의 통곡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고 그날 그렇게 비가 왔던 것도 어쩌면 하늘마저도 제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때부터의 기억은 봉긋 솟은 할아버지의 무덤까지 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입으시던 옷가지들과 즐겨 피우시던 담배와 할아버지의 흔적과 할아버지를 향한 슬픔과 그렇게 꽃상여를 태우는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흰나비 한 마리가 꽃상여로 날아 들어가 날개짓을 해댔습니다. 아직도 그 날개짓이 필름처럼 생생합니다.
할아버지는 제 어릴적 기억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이가 상한다고 엄마께서 절대 주시지 않았던 사탕을 한주먹 두주먹 꼬옥 쥐어 주시던 그 손길과 설날이 되어 세배를 하면 빳빳한 천원짜리 10장을 새하얀 봉투에 담아주시던 막내 손녀에 대한 애틋함과 할아버지와 함께 느즈막한 밤에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무협영화를 보다 같이 잠이 들었던 기억과(엄마께선 할아버지와 제가 코고는 소리가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틈틈이 한자도 가르쳐 주시며 잘 모르면 꿀밤한대 때리시곤 울먹하는 저를 보시면서 굵직한 주름살 위로 떠올린 웃음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새겨둔 기억속의 죽음은 그가 첫 주인공이였기에 그 슬픔과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슬픈 생각으로 울다보면 항상 할아버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할아버지께서 슬퍼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요.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주위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더 만들지 못한게 후회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야겠습니다. 아까 싸워 토라진 동생과 화해하고 지금 싸워서 아는 체 않는 친구 원혜에게 사과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친구,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내 영원한 친구, 할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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