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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잔뜩 흐리고, 빗방울은 간간히 비치고, 기온은 늦가을 저녁같은 날씨.

날씨처럼 괴롭고 힘들었던 연말연시, 술에도 담궈보고 외로움에도 담궈보고, 어느것 하나 신통치 않았다. 달리면서 실마리를 풀고 싶었다. 칼날같은 겨울바람에 온몸을 맡기기로 하고 나섰다.

그러나 마라톤은 역시 솔직했다. 준비 안된 나를 거부해서 내내 힘들었다. 땀흘리지 않고서는 오기도 투지도 따라주지 않는다. 사전에 험한 코스로 알고는 있었지만 풀코스에서 하프로 꼬리내린 내모습이 그랬고 마라톤 코스가 마치 등산코스로 착각되기도 했고 초반부터 헉헉대던 내모습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헉헉대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다음에는 내리막이겠지 하고 올라서면 또 무심하게 굽이쳐 오르는 오르막길에 지쳐대는 내모습은 연말에 힘들어하며 비척거리던 때를 옮겨놓은 것같아 싫었다.

현실을 잠시 잊기위해, 더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 마라톤을 하는 것은 오만이다. 누군가 그랬다.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고 고독한 참선’이라고. 오직 달리면서 내내 달기는 것에만 골몰하고 한발짝 한발짝 고통을 느끼면서 즐기는 것, 그것만이 결승점에서 모두에게 그리고 나자신에게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안겨다 준다.

출발점부터 시작된 가파른 경사길을 헉헉대며 3㎞쯤 올라가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녀석들 둘이서 무반주 무박자에 오직 목청하나로 ‘남행열차’를 불러댄다. 분명히 이건 격려라기 보다는 광기다. 헉헉대며 올라서면서도 녀석들의 광기가 참 이뻐 보인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이런 광기를 즐기게 됐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런 광기를 느끼는게 싫지 않아졌다.

7㎞쯤 가자 길가 주변 밭에 분뇨를 뿌렸는지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코를 자극시킨다. 주민들 몇몇 분이서 박수를 쳐주며 내 피붙이 처럼 환호해 준다.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손잡고 인사를 하고나니 시원한 이온음료 한 잔을 마신 것 처럼 마음속에 힘이 솟는다.

고대하던 반환점에서 연거푸 음료수 두 잔을 들이키고 돌아서니 풀코스를 향해서 달리는 분들께 혼자서 고통을 피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반환점을 돌아 달려올 때는 오히려 힘이 덜든다. 반환점을 행해서 달려오는 마주오는 분들에게 “힘!” “파이팅!” “힘내세요!”하고 외치니 오히려 내가 더 힘이 난다.

살면서 오직 내 테두리 안에서 갇혀서 살게 되면 세상이 더 밋밋하고 힘이든다. 주변도 돌아보고 엎어진 사람에게 손도 내밀면 오히려 내가 더 편안하고 힘이난다. 마라톤을 하면서 철이나는 걸까?

15㎞를 지나면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 조금씩 처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달리다 보니 문뜩 앞지르는 할아버지 한 분, 매 대회 때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가슴에 ‘지평선 쌀’을 써 붙이고 출전해서는 한번도 따라잡지 못하고 자괴심만 심어주던 흰머리 할아버지. 오늘만은 하면서 앞지르기를 시도한다. 경사가 심해서 인지 할아버지는 더 이상 내마음을 불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17㎞쯤 달리니 제법 다리가 실해 보이는 여자 한 분이 앞서가는 게 보인다. 하프여자 일등, 역시 대회 때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해주던 여자 선두. 조금 오버해서 속도를 내보니 오르막길이라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마지막 오르막길 정상, 결승점을 2㎞ 남겨 놓은 지점, 누군가 뒤에서 고함을 질러댄다. 어렵게 오른 오르막길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이, 분명 자신감일게다. 독톡한 대가를 치루고 얻은.

드디어 결승지점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이고 음악소리가 요란한 서커스가 열리는 시골장날 같다. 박수를 쳐주고 환호해 주는 모습이 모두 우리 가족같아 고맙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몸에 거품을 빼라고 끌고온 막내동생이 거의 마라톤 마무리를 하면서 몸을 끌고 들어온다. 얼굴에는 웃음이 터질 것 같다.

문제는 시간과 기록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각자가 바램을 안고 해돋이를 기다리는 심정들이 조금씩 바래지는 시간쯤에 거제도 마라톤을 내려 오면서 어느 마라톤 동우회가 내건 플랭카드가 눈길을 붙잡는다.

‘목표가 있으면 땀을 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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