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우리의 내실과 외실은 흉작이었다. ‘게이트’성 부정부패로 나라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으며, 국민에게 공약한 4대공약인 금융·기업·공공·노동 등이 마무리 되지 못했거나 지지부진하고, 남북관계는 구걸하듯 고대하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무산됐고 실무회담도 일년 내내 입씨름만 하다 빈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한일교과서 왜곡문제는 10개월 동안 끌고 당기는 공방 끝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꽁치잡이 분쟁 등의 악재도 속시원한 결말을 풀지 못했다.

혈맹인 미국과는 상호신뢰가 흔들리는 한해였다. 부시정권은 아직도 북한의 위협이 여전하다고 본다. 부시정권은 DJ의 ‘포괄적 상호주의’라는 것이 상호주의가 아닌 ‘모호한 정책’이라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젊은층이나 식자들은 “미국은 통일을 방해하는 나라”라는 반미정서가 성장하고 있는가 하면, 일부 지성 가운데는 ‘허구적 우월감’을 반미주의로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지성의 생명은 비방이 아니고 비판이다. 비방은 자기를 포함시키지 않은 무책임과 편리가 있지만 비판은 항상 자기살을 도려내는 아픔까지도 포함한다는 윤리관이 있어야 한다고 미국의 칼럼리스트들이 지적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DJ의 햇볕정책이 북한 달래기에 치중한 나머지 미국과의 관계마저 껄끄럽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햇볕정책은 역설적으로도 지난날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교섭을 통해 한·미 관계를 이간하려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 의도했던 바와 같은 결과를 초래해 버렸다.

북한은 7천만 민족의 국가지상, 민족지상의 절대명제를 도외시 했다.

한편,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을 유치했고, 2001년에는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의 꿈을 실현했다. 국민총생산(GDP)10조2천억 달러로 세계 6위인 이탈리아의 경제규모를 능가해 세계 5위인 프랑스를 앞지를 것이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중국 푸둥(逋東)을 방문해 ‘천지개벽’이라고 격찬한 것이 미국과 일본이 경계하고 있어 그 틈바구니에 끼여 난처한 것은 한국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신장(新强) 위구르와 체첸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탄압을 인정했다.

이로서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신장 위구르’와 체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료단계에 들어가면서 미국이 장기주둔 채비를 갖추자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이를 허용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2002. 1월 초순 상하이협력기구(SCO) 임시외무장관회의를 베이징(北京)에서 열었다.

그 공동성명은 “아프가니스탄에 특정의 관리방법을 강요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을 ‘특정’의 영향하에 두려는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주변지역에 새로운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이란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주베키스탄 등 6개국을 말하며 1996년 중국 주도로 창립된 중앙아시아국제회의(SCO)다.

중국은 이곳에 미군의 장기주둔을 두려워한다. 한국, 일본, 대만, 인도로 연결되는 미국의 대중포위망이 중앙아시아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구 소련의 영토였으며 러시의 뒷마당이나 다름없는 중앙아시아에 미군이 자리잡는 것이 달가울리 없다.

1990년 중반 카자흐스탄에 500억 배럴의 석유매장량이 추정됐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남은 석유매장량이 300억 배럴이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석유수송관 설치문제가 크게 떠오른다. 미국 석유회사 UNOCAL은 1994년부터 투르크메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 파기스탄 - 아라비아 해로 빠지는 송유관 건설을 추진해 왔으나 1998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 공격에 중단되고 있다.

석유라는 좋은 먹이감이 주어졌으니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벌어졌던 강대국 영국과 러시아간의 파워게임을 연상시키며 새로운 거대한 게임이 연장된다고 할 것이다.

2001년 사회주의 명패를 달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한 때 사회주의 나라였던 러시아와 인도가 4~7%의 높은 성장률을 이룩함에 주목받고 있다.

올해도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이 빠른 경제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 ‘후발개도국’이 세계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않아 우리의 관심이 주목된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인도 신흥 4룡(4龍)의 날개가 활짝폈다.

오늘날 세계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살아가고 있고 10억명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인구 1, 2위 나라인 중국(13억)과 인도(10억)를 포함한 이들 나라의 인구는 세계 전체인구의 40%를 넘는다는 점에서도 이들 성장은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

오늘날 국제관계는 강대국들이 ‘협조’를 통해 갈등을 관리해 나가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외교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신 국제질서에 참여시키고 있는 것은 오늘의 국제질서를 ‘화해와 협조’의 체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세계화 시대를 상호의존의 시대로 전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남과 손을 잡고 남과 더불어 사는 네트워크(net work society) 사회의 기초는 신뢰이다. 이 신뢰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초 덕목을 실천할 때 저절로 쌓여가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소박한 생각이 친절, 정직, 질서, 준법의 솔선수범으로 사회적 신뢰가 싹트면 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월등히 앞선 일본과 공동개최 하는 ‘월드컵 2002’은 우리사회의 근원적 의식해결의 전기로 활용할 것을 국민에게 호소한다. 50억 지구촌이 직·간접으로 우리와 일본 사회를 비교 평가할 것임도 명심하여 일본인 보다 더 높은 사회적 성숙도를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2002년은 우리에게 분명히 각별한 해이다. 이 나라를 앞으로 5년간 이끌어 갈 새 대통령 선출과 세계인의 큰 축제인 ‘월드컵 2002’를 개최하는 해이다.

국민 모두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겨레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를 찾아나설 때 국민과 국가를 위한 참된 지도자가 창출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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