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8일 2002년은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언명하면서 ‘깡패국가’에 이란, 이라크, 북한을 지적하더니 1월 29일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惡)의 축(軸) (axis of evil)’으로 지칭했다.

미국은 이들 나라로부터 위험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부시 대통령은 이 나라들에 대한 국제포위망을 구축하면서 고삐를 죄고 있다.

적의(敵意)의 칼 끝이 북한을 표나게 겨누고 있는데 대해 우리로서는 마냥 대범할 수 만도 없다. 미국은 기다리지 않고 북한으로 다가 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전쟁위협이란 엄청난 공황심리를 유발시키고 있다.

최첨단 신무기를 동원하여 작전 개시 3개월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후 부시가 처음 발표한 연두교서라는 점에서 미국이 앞으로 어떠한 테러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계기로 삼을 것이 명백해졌다. 그러기 때문에 매우 강경한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북한은 9·11사태 이후 미국에게 간접적으로나 조의를 표했고 반테러국제협약에도 가입했으며 미·북 제네바합의를 그대로 준수하는 등 적절한 시점에서 미국과의 접근을 해보려고 고심중에 부시가 이와같이 공개적으로 국제적인 오명을 씌울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대량살상 무기와 미사일을 개발 시험하지 말 것과 핵사찰 수용, 미사일 생화학 무기 협상 등 대량살상 무기 문제체결에 협조할 것이며, 미사일 실험 대량살상 무기와 그 기술의 수출 등 반테러전쟁에 역행하는 행위를 중지하라는 것이다.

만일 북한이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 수출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능력이 동북아시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인 파장을 갖고 온다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하지 않으면 미국은 미국이 가야 할 길을 갈 것이며 한국은 한국대로 햇볕정책을 계속 밀고 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 비슷한 낭패를 경험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우리 정부는 미국 미사일 방어망 추진계획을 모르고 러시아의 주장에 찬동해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조약의 유지를 지지했었다.

그러한 사건이 있은 직후인 3월 7일 워싱턴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한·러 간의 약속을 해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뿐 아니라 한·미정상회담 후 대북화해와 협력의 햇볕정책에 제동이 걸려 얼어붙기까지 했다.

우리 정부가 국제흐름이나 정보해독을 잘 못했거나 애써 외면한 것이 빚은 중대사건이였다.

클린턴 정부 말기까지만해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력 사용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여긴다고는 생각도 안했었다.

그러나 WTC의 쌍둥이 건물이 잿더미로 변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미국은 세계를 ‘선(善)과 악(惡)의 축(軸)’으로 나누고는 상대가 ‘악(惡)의 축(軸)’이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군사적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하고 독선적인 일방주의인가.

유럽 유일의 프랑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웅’지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이라 규정한 북한, 이란, 이라크를 ‘조준선 위의 3국’이라고 비교했다.

3국중 북한에게는 3백만명의 주민을 굶겨 죽인 최후의 스탈린주의 국가, 또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미사일을 수출하고 1~2개의 핵폭탄을 만들기에 충분한 플로토늄을 확보하고 있다며 비판했고 IAEA 사찰도 거부하고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위협을 과시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양보만 얻어내려 한다면 동정의 여지가 없는 북한의 고집이 답답하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러한 레코릭(retoric)은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함으로써 한반도에 먹구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데 있다고 비판하였다.

21세기 세계적 차원의 냉전이 종식된지도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한국민들은 그 혜택을 누리기는 커녕 계속되는 안보위험에 시달려 오고 있다.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1994년 5월 18일 전 세계 미군기지의 대장(大將)급 장성과 제독들이 미국방부에 소집되어 전면적인 북한공격을 검토했다. 월리엄페리 국방장관, 존샐리캐슈빌리 합참의장, 게리럭 주한미군사령관 등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처음 90일간 미군 5만2천명, 한국군 49만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북한도 민간인을 포함해 대량 사상자가 발생한다. 재정부담도 6백10억달러를 넘는다. 그해 6월 중순경 선제공격을 상정한 ‘5027작전’을 세워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사망자는 1백만명이 넘게되고 미국인도 10만명 가량이 목숨을 잃는다. 전비만도 1천억달러를 넘는다.

전쟁 일보전의 대북전 계획은 클린턴 대통령이 동계획을 중단했고 대북강경을 고수했던 김영삼 대통령도 상상을 넘은 전쟁시나리오를 지지할 수 없었다.

1994년의 한반도 핵 및 전쟁위기도 1991년 걸프전에서 압승한 미국의 일방적 대북핵사찰 압박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며 1996년 9월 18일 강릉 앞바다에 침투한 북무장잠수함정의 정보를 호주, 캐나다, 일본 등 우방국에게는 제공하면서 막상 혈맹(血盟)인 우리에게는 일언반구의 조언도 없이 미해군 정보분석관 로버트 김(김채곤)이 이 사실을 주미대사관 무관 백동일(白東一) 대령(1994년 10월 이후 FBI의 감시를 받고 있던 중임)에게 제공하자 간첩죄를 씌워 9년 징역에 3년간 감호처분을 받고 현재 6년째 복역중으로 한·미-북·미 간의 갈등과 알력으로 외로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

‘악(惡)의 축(軸)’도 3개월만에 탈레반 정권을 괴멸시킨 여파로서 악을 제거하겠다는 부시 독트린은 북한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동명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은 뭔가 숨겨진 동기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한반도에 대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 미국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뒤 미쳐 1905년 7월 29일 가쓰라 일본수상과 태프드 미육상 간의 밀약을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에 이어 1910년 8월 29일 한일늑결로 일본에 예속되었고 1945년 12월 27일 미 영 중 소 4개국 5개년 선탁통치로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1949년 6월 19일 주한미군의 일방적 철군과 1950년 1월 10일 애치손라인으로 6·25가 발발되었고, 1953년 7월 27일 한국이 배제된 휴전협정 등등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20일 한미정상회담을 기하여 허심탄회하게 북미, 한미, 남북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직간접의 현안을 심도있고 솔직한 논의와 검토를 거듭하기를 바라며 미국은 혈맹이기에 너그럽고 관대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굳건한 대북전쟁 억제력을 유지함에 있어서는 한미안보협력체계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실질적인 현실론을 강조해야 하고, 주권 국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문제지만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면 그런 압력이 되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인은 한국인이다. 고로 한반도 운명이 미국의 손에서 좌지우지될 수 없음을 그것이 두 나라에 두루 보탬이 된다는 점을 당당하게 전하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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