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 외래교수)

눈이 오는 찬 겨울이 되면 율촌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었다. 그곳 초입 산길 어딘가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화장터가 있고, ‘여수’라는 이름의 다방에 들어서면 한켠에 놓인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고 있을 혼자 남은 엔젤과 7마리의 열대어들도 그대로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공간들에는 언제나 비린내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썩어가는 것들에게서 나는, 혹은 생의 근원과 삶이라는 현장에서 멀리 떠나와 버린 채 조락과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는 것들에게서 느끼는 그런 비린내.

어류는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진 대신 눈물이 없다.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그들에게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느낄 수 없다면 그들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셈이다.

자유, 망망대해를 나는 물새.

날개에 기운이 다하는데도 그의 비극을 그만이 감수하는, 목숨과 목숨이 무관하고 자유와 자유가 무관계한 죽음의 자유일 것이다. (「북망의 그늘」, 『바람과 도시』, 175쪽)

삶은 비린내투성이다. 치열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은 가끔 자신의 삶의 끝을 보고 싶어 하는, 끝장을 내고 싶어 안달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타나토스의 욕망덩어리로 비쳐질 때가 있다. 그 죽을 지경으로 치닫는 모습은 이균영의 소설에서 표현했듯 죽음을 향하지만,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자위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난 회에 소개했던 광양 출신의 사학자이자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이균영의 1978년 10월 발표 작품 「북망의 그늘」을 읽고 난 후 느꼈던 감상이다.

30대 중반의 어린 두 아이를 둔 남자 ‘나’가 눈발이 내리는 겨울밤 율촌을 찾아온다. 고장 난 버스 안에서 내리는 눈발에 언뜻언뜻 비쳐지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화장터를 보고, 여수라는 이름의 다방에 들어선다. 그곳에는 어부들이 TV를 둘러싸고 시끌벅적하게 중계방송을 관람하고 있다. 한국의 권투선수 S가 다른 나라의 A라는 도전자를 상대로 하는 타이틀 방어전이 한창이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열다섯 라운드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수족관에서 꼿꼿하게 죽어있는 한 마리의 엔젤을 보고, ‘박’이라는 사내와 말을 섞으며 소주를 마신다. 시종일관 ‘나’의 코끝에는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나’는 먼 옛날 재혼한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다.

「북망의 그늘」은 삶의 치열한 난투극의 끝에 죽음에 이른 어머니의 눈을 감겨드리며, 슬픔으로 어머니를 애도하는 씨 다른 형제들을 만나는 ‘나’의 겨울 율촌행을 그린 작품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나’가 다방에서 인절미를 하나 사먹는 부분이다. 귀신 밥인 떡을 훔쳐다 파는 할망구에게서. 화장수가 화장할 때 제물로 바쳐진 인절미를 떡장수에게 팔아치우는데 ‘나’ 그 떡을 먹은 것이다. ‘나’는 송장 귀신과 음식을 나눠먹었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다 토해낸다. 죽음을 느끼고, 죽음을 먹고, 다시 토해내는 일련의 행동은 삶과 죽음의 간격을 없애는 모습이다. 죽음을 꿀꺽 삼켰다가 다시 삶을 위해 토해내는 ‘나’는 어머니의 낯선 주검과 너무 가벼워 빠트려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더럭 겁이 나게 하는 어린 자식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 사이에는 두들겨 맞으며 쓰러져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패배자의 모습과 짝의 죽음에도 의연히 먹이통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남겨진 한 마리의 엔젤의 유영이 있다. 비린내와 함께. ‘나’ 역시도 남겨진 한 마리의 엔젤처럼 다음 날 해가 뜨면 그 율촌을 빠져나갈 것이다. 북망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이다.

북망의 그늘에서 죽음을 삼키고, 삶을 토해내며 사는 비린내 나는 순간을 율촌에 가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날 율촌의 포구에 가보고 싶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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