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ㆍ특집 특집
거북선의 구조, '2층인가, 3층인가' 구조설 논란최근 2,5층 구조설이 우세

   
▲ 27일 중앙동 이순신 광장 앞 물량장 거북선 제작현장.
거북선은 1592년 2월 9일 선체가 완성되었으며 4월 15일에 진수하자마자 함포사격시험을 단행했다. 거북선이 실전에 투입된 것은 1592년 5월 29일 당포해전이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돌격선으로 운용, 일본과 싸워 전승을 이룩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거북선의 구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2층 구조였다는 설과 3층 구조였다는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해 가장 먼저 논문을 발표한 언더우드 호레이스가 거북선의 내부구조를 2층으로 추정했다.

1층에는 노를 젓는 격군과 2층에는 전투원이 배치됐다는 것이다. 거북선에 대한 국내에서의 본격적인 연구는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되면서 김재근 교수는 2층 구조설에 동조했다. 반면 남천우 교수와 장학근 이순신연구소 소장은 기존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거북선의 2층 구조에 이의를 제기했다. 거북선의 전투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려면 거북선의 구조는 3층이었다는 것이다.

즉, 1층에 군량 무기창고 군졸의 침실과 2층의 갑판 노군과 사수의 전투장소. 3층 상갑판은 포수들의 전투장소로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3층 구조를 주장한 장학근 소장은 한국식의 노를 사용하는 것을 입증하고 판옥선과 거북선의 연속성을 찾으려고 하였다는 점, 전투원과 격군의 활동공간이 구분되어 거북선의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적 구조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2004년 8월 뉴욕에서 채색 거북선의 그림이 공개되면서 3층 구조설에 보다 힘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충무공전서>의 개판포구(蓋版砲口)는 거북선의 좌우 방패의 포구와 별도로 개판(등판)에 포구가 있었다는 근거를 내세워 3층 구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2층과는 별도의 다른 층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포를 쏘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 이순신의 당포해전 장계에 등장하는 용구방포(龍口放砲)의 기록을 근거로 용머리에서 포를 발사했다면 위치상 그곳은 3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3층 구조로 거북선을 만들어보니 배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경남도는 3층 구조의 거북선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실제 사용된 거북선이며, 2층 구조 거북선은 1700년 이후 건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사적 고증을 검토, 실제로 3층 거북선을 제작했다. 길이는 25.6m, 폭이 8.6m, 돛을 제외한 높이가 6.06m이고 배 중앙에 12.8m와 11.3m의 돛이 설치된 3층 거북선의 선체하부는 나무가 아니라 방수를 위해 FRP로 처리됐다. 게다가 3층 구조 때문에 무게중심이 높아 배가 흔들리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바닥에는 아예 시멘트를 깔았다. 

 최근에는 정진술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충무공전서에 나타난 거북선의 내부구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놓았다.

1795년 거북선은 3층 구조임은 틀림이 없지만 3층 갑판이 전통형식의 갑판이 아니고 노군들이 노질을 하는 머리 윗부분은 갑판이 비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정희선 청암대 교수는 "2층 구조 또는 3층 구조의 논란은 이미 끝났다"며 "다락이 있는 구조를 연상하는 2.5층 구조로결론이 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층 또는 3층, 중간 형태인 2.5층 구조에 대해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 군선의 전투능력이 외형보다 내부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훈련된 병사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내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북선의 내부구조에 대한 이유가 밝혀져야 임진왜란의 전승 원인을 밝힐 수있기 때문이다.

여수는 거북선을 건조한 고장이다. 거북선은 여수를 상징한다. 따라서 2.5층 구조의 거북선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황상석 기자  yeosu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상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