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자수첩
연말 송년 모임에 앞서<데스크 칼럼> 김현석 편집위원장

연말연시! 거리마다 점멸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흥겨운 성탄 캐럴송도 우리 귀를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들의 발랄한 수다 소리도 부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연말의 송년 분위기는 이렇게 거리에서, 성탄절의 불빛에서 흥겹게 시작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을 잡고 모임 장소를 물색하고, 그 모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재밌는 건배사를 외치는 풍경은 우리 한국사회가 유별나다. 연말 송년모임 풍경에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김영명 교수는 한국이 처한 두 가지 ‘조건’과 한국인의 다섯 가지 속성을 지적한 바 있었는데, 두 가지 조건으로는 ‘단일성’과 ‘밀집성’을, 다섯 가지 속성은 ‘획일성, 집중성, 극단성, 조급성, 역동성’을 거론했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 코드’라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인의 쏠림문화와 관존민비, 출세주의, 입장주의, 그리고 냉소주의를 적나라하게 정리해 발표했다.

특히 성찰 없는 비판 문화에 대한 강 교수의 일침은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대개 비판은 ‘진영 논리’에서 나온다. 어느 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그것이 반대편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건 틀린 말이 된다.

사실 옳은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상대편에게 타격이 되는 사안이라면 우리 편에게도 자멸에 이르는 사안이 된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대한민국 각 기관들이 그동안 관행대로 집행해 온 특수활동비 내역을 제대로 조사하기만하면 검·경 같은 수사기관 종사자들조차도 하루아침에 범죄피의자로 만들 수 있다는, 그래서 이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같은 고강도 개혁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라는.

엄밀한 비판의 잣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나도 나지만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상대가 아무리 옳은 말로 비판해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당당하고 쉽게 나온다. 이게 우리 문화의 현주소다. 이른바 냉소주의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신과 무관치 않은 일까지 제3자의 자세로 보면서 빈정대기 일쑤다.

한국사회에서 냉소주의는 그 역사가 깊다. 조선 말기에는 관리의 민중 수탈이 어찌나 심했던지 차라리 가난이 수탈의 유일한 보호막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제치하에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민중의 공공기관과 엘리트 계층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을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극심한 내부 분열과 충돌로 점철된 해방정국에서 민생에 허덕이던 민중이 냉소 이외에 무엇으로 안전을 도모했을까. 6.25 전쟁 중엔 정부가 서울시민을 속이면서까지 도망가기에 바빴고 돌아와서는 피난을 못 간 잔류파를 처단하기에 바빴다. 좌우 어느 쪽에 줄을 서느나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그 이후 한 세대에 걸친 세월도 긍정적이 측면이 있긴 했지만 부패와 독재로 민중의 냉소주의를 고착화시켰다.(한국인 코드.인물과사상사.p23)

"너나 잘하세요“는 비아냥인 동시에 성찰을 요구하는 일침이다. ‘성찰성’이라는 말은 원래 인식론에서 사용되던 철학 용어로 내가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것이 내 주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게 영 쉽게 되지는 않는다. 자신에겐 너그럽고 남에겐 엄격한 게 우리다. 성찰은 먼 훗날 회고록 쓸 때나 떠올리는 단어일 뿐이다.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권인숙 교수는 “이전에는 사람을 만나면 특성이나 능력, 기질을 가지고 평가했는데 요즘은 성찰적 능력이 있는가가 제일 궁금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찰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이기심과 복잡한 자기욕구를 극복한 도인 같은 이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로 해당된다. 그런데 단순히 생각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관대함을 키울 때 성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찰성을 갖추었을 때 옳고 그름, 잘한 일, 못한 일, 절대선·절대악의 이분법적 규정이 훨씬 덜해지고, 피해의식과 방어의식, 심한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성찰성에서 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대화를 통한 자기성찰의 기록. 창비)

흥겹고 정겨운 송년 모임이 한창인 요즘. 우리 각자가 올 한 해를 성찰하는 모임으로 마무리 해 보는 건 어떨까. 자화자찬하기 바쁜 한 마디 보다 성찰성이 담긴 한 마디가 더 그리운 계절이다.

김현석 기자  arguskim@outlook.kr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현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