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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순하고 순결한 젊음을 살다간 시인
한영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오철곤 교수

오매불망 조국광복을 위해 청춘을 바친 임정요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수송기에 몸을 싣고 그토록 그리던 조국에 첫발을 디딘 여의도에서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진행되는 오늘, 조국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이국 땅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아까운 나이로 숨진 윤동주 시인을 함께 추모하고 싶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그의 나이 24세 때 그날의 일기를 적듯 자아성찰로 쓴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입니다.

윤동주의 서시는 우리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 중의 하나입니다. 10여년 전의 조사결과 이긴 하지만 국민들이 애송하는 시에서 소월의 ‘진달래꽃’ 다음으로 ‘서시’가 자리했으며 시인들이 뽑은 시에서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시가 바로 서시입니다.

해방 후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또는 전쟁의 참담한 폐허 속에서 방황하던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감동과 위안과 용기를 준 시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윤동주의 시일 것입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서시의 순결한 젊음과 뜨거운 운명의 시선은 사회적 무질서와 정신적 황무지에 방치되었던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생의 용기와 신념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서시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에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사연이 있습니다. 우리고장 이웃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연이 없었더라면 윤동주 시인의 주옥같은 시들은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었을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하면 함께 떠오르는 분이 국문학의 대가 정병욱 교수입니다.

우리 고전 문학사의 대가인 정병욱 교수는 1922년 경남 남해군에서 태어나 동래고보를 거쳐 1940년 4월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연희전문 입학 당시의 학적부에 기재된 주소가 광양군 진월면 망덕리 23번지로 정병욱 교수의 할아버지 정상철씨가 남해에서 광양으로 생활터를 옮긴 뒤 아버지 정남섭씨가 양조장을 경영하기 위해 신축한 점포식 가옥이 자리한 곳입니다. 

정병욱 교수가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이 바로 윤동주 시인입니다. 나이로는 윤동주 시인이 다섯 살 위이고, 학년은 2년 위였습니다. 단 한권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살아남기까지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통째로 사라질 뻔했던 육필원고 묶음을 바로 후배이자 문우인 정병욱과 그 가족이 보관하여 세상에 알린 것입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윤동주는 그동안 썼던 백여 편의 시들 중에서 골라낸 19편의 시들을 원고지에 정성껏 옮겨서 시집을 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글로 된 시집을 출간하기엔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는 스승 이양하 교수의 권고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세 권의 원고 묶음을 만들어 한 권은 자신이 보관하고, 한 권은 스승 이양하 교수에게, 그리고 한 권은 문우인 정병욱에게 선물합니다. 좋은 때가 오면 반드시 시집을 내겠다는 희망이 담긴 원고였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된 후 정병욱도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정병욱은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원고를 모친 ‘박아지’ 여사님께 맡기며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꼭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 달라”고 유언처럼 부탁을 합니다. 아들의 비장한 부탁을 받은 모친은 ‘서시’ 원고를 비단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서 항아리에 넣은 다음 거실의 마룻장을 뜯어내고 마루 밑에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윤동주가 1945년 2월16일,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안타깝게 요절한 까닭에 윤동주 소장본은 찾을 수 없었고, 스승 이양하 교수에게 맡겼던 시집도 해방 등 격변기에 역시 소멸되어 전해지지 않았으며 이제 세상에 남겨진 것은 오직 문우 정병욱에게 맡겨졌던 '서시(序詩)' 필사본 한 부 뿐이었습니다. 이 필사본은 해방이 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정병욱에게 온전하게 넘겨지게 됩니다.

1948년에 정병욱은 윤동주의 연희전문 동기이자 시인인 강처중과 함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하여 망덕포구의 마루 밑에 숨어 있던 윤동주의 시혼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윤동주의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한 정병욱의 어머니가 유고를 보관한 곳이 바로 망덕포구에 있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입니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더라면, 아들의 부탁을 당신의 목숨처럼 여긴 ‘박아지’여사의 지극함이 없었더라면 윤동주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입니다.

이 기적 같은 일도 결국은 만남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정병욱 교수의 여동생 정덕희가 윤동주 시인의 남동생 윤일주 교수와 결혼하여 윤동주 시인 집안과 정병욱 교수의 집안은 사돈간이 됩니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를 보관하였던 정병욱 가옥은 현재 정병욱 교수의 외조카 박춘식씨가 소유주로, 문화해설사들과 함께 탐방객을 맞아 가옥의 생생한 내력을 소개해주고 계십니다.

이국 땅에서 광복의 꿈을 키우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국을 잃은 민족의 설움을 자기 자신의 죄인 양 괴로워했던 한 젊은이의 순결을 찾아 자녀들과 함께 정병욱 가옥을 찾아보시길 간곡하게 권해봅니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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