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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선거구 획정으로 선거판을 난장판 만들셈인가.총선 두달 앞두고 또다시 게리멘더링
정치 후진성 자인, 지역 갈등과 분열 초래
조규봉 논설실장

오는 4월 10일 치러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달 남짓 코앞에 다가왔다. 이맘 때 쯤이면 누가 출마했느니, 후보자의 자질이나 역량은 어떻니, 공약은 뭐니 등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을 법도 한데 다들 먹고살기가 팍팍해서 그런지 그닥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설명절을 앞두고 전남 동부권의 여수·순천을 한데 묶어 갑·을·병 3개 선거구로 쪼개는 새로운 획정안이 급부상하면서 지역 정가가 요동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보통 행정구역과 인구수, 생활권, 교통, 정치경제적, 사회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론 정치공학적 유불리나 거대 양당,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막판에 급작스럽게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남의 경우, 지난해 1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서부권에서 1석을 줄이는 대신, 인구수 기준 전남 제1의 도시인 순천을 분구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서부권에서는 영암·무안·신안이 공중분해되고 1석이 줄어들게 되자 해당 지역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수와 순천을 통합해 갑·을·병 3개 선거구로 나누고, 광양곡성구례를 1개의 선거구로 묶는 안에 대해 집중 논의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언뜻 보면 서부권에서 1곳을 줄이지 않고도 전남에 총 10개의 선거구가 유지되는 것이니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준엄한 가치를 수호해야 할 국회가 정작 별다른 의견수렴 절차없이 일방적으로 선거구를 확정한다면, 이는 곧 해당 지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자 밀실야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일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돼 있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현재 선거제도 개편이나 정당 구도가 명확하지 않아 그렇잖아도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막판 벼락치기로 지역구를 헤집어 놓는다면 자칫 선거판이 난장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미 출사표를 던지고 지역구를 다지고 있는 입지자들은 물론 유권자들 또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여수와 순천에 출사표를 던진 현역 국회의원과 예비후보들은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비정상적인 선거구를 만들려 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여수시을)은 “지난 총선에서 게리멘더링(선거구의 자의적 분할·합병)을 통해 순천 선거구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번엔 여수를 기형적 선거구로 만들려 한다”며 “이는 원칙도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지역분열만 부추키는 것으로 단호히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주철현 의원(여수시갑)은 “두개 행정구역을 합해 선거구를 3곳으로 나누려면 그중에 한 선거구가 최소 인구에 미달해야 한다”며 “구례와 곡성의 경우 최소 인구 미달로 순천광양곡성구례라는 통합·분구가 가능했지만, 여수·순천의 경우 현행대로는 갑을병 지역구를 만들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여수을에 출마한 권오봉 예비후보는“ 갑작스런 선거구 재분할은 공정한 선거 체계를 흔드는 것”이라고 했고, 조계원 예비후보도 “이미 지역 공약을 담은 홍보물을 배포했고, 최종 경선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 황당한 획정안이 등장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순천 출마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순천 갑·을 분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고, 같은 당 서갑원 예비후도는 “지난 총선에서 순천시 해룡면을 광양곡성구례과 억지로 붙여놓은 것도 기형적인데, 또다시 순천을 여수와 통합해 찢어놓는다는 것은 해당 주민들에 대한 지나친 권리 침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흔히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가 절차에 대한 충분한 논의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고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면 이는 곧 국민 참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입법기관인 국회 스스로 정치후진성을 자인하는 꼴이다. 결국 주권자인 국민들은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소수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국가권력이 독과점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선거구 획정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시간적·물리적으로 힘들더라도 최대한 숙의와 전문가 조언, 각계 의견을 수렴해 솔로몬의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조규봉 기자  cgb21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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