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들의 반대여론은 여천산단 안전관리를 믿을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주 및 안전을 위한 투자가 조속히 이뤄져야 하며 안전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한 신규공장입주와 증설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바스프사에 국한하지 말자
최근 독일 바스프사의 ＴＤＩ공장 유치로 인해 지역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물론 바스프사가 아니더라도 여천산단 자체가 석유산업 및 화학 관련업체 대부분의 공장이 유해성 물질을 취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민들이 유독 바스프사의 입주를 반대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로 ‘여천산단의 안전관리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입주를 찬성하는 경제단체들이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은 고용창출과 연관산업발전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산단내 안전과 이주대책은 정부의 몫이지 바스프사의 문제가 아니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 만들어지는 공장은 기존의 노후화된 다른 공장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입주 반대측에서도 기존의 노후화된 공장보다 안전하다는 점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고용창출과 연관산업발전 효과는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측과 반대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바스프사 입주 문제는 지역민들간의 갈등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여천산단 안전에 문제가 없는가
입주를 찬성하는 측은 ‘법에서 규정하는 안전관리시설이 완벽히 갖춰질 것인데도 사고가능성 만으로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측에선‘사고란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부분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 모른다’고 맞서고 있다.
역시 논란의 중심은 안전문제다.
도대체 여천산단에서 그동안 어떤일이 일어났기에 이처럼 안전문제에 민감한가? 여천산단 사고사례를 살펴보면 1971년부터 작년 9월까지 30년동안 총 1백74건의 사고가 발생됐고 9백12명이 피해를 입었으며 이중 사망자만도 78명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여천산단시설이 대부분 노후화돼 해가 거듭될수록 사고수와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70년대에 7건, 80년대에 33건, 90년대에 1백22건의 사고가 일어났으며 작년은 9월까지만 벌써 1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96년 감사원과 정부의 합동점검 결과, 여천산단 연쇄 폭발가능성이 제기되자 지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시급한 시일 내에 ＧＩＳ를 구축하지 않으면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ＧＩＳ구축을 위한 예산분담방안은 방치되고 있다.
또한 여천산단내 각종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도 여수시, 소방서, 한국산업안전공단, 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실시하고 있어 통합적인 관리가 되지 않고있다. 이에 따라 안전사고 발생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사고발생시 책임기관의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람살기 어려운 땅이면 이주라도 시켜줘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고로 인해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인근 주민들이다. 대기오염, 토양오염, 식수오염, 바다오염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주민들은 벌써 수십년째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말 국회에서 통과된 산단주변마을 이주대책비는 30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당초 전남도와 지역 국회의원이 요청한 74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액수였다.
산단은 노후화로 인해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주를 위한 대책비 지원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산단, 지역에 기여한 게 뭔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주변마을 이주를 위한 재원을 만들려 해도 쉽지가 않다. 여천산단에서 연간 징수하는 세금 4조1천억원 중, 4조7백72억원이 국세로 들어가고, 2백77억원 만이 지방세로 징수되기 때문이다.
이는 여수시가 여천산단에 필요한 상하수도, 도로보수 및 각종 기반시설 관리, 환경오염방지를 위해 투입한 액수에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물론 여천산단이 1만2천명의 고용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만2천명의 고용효과를 창출한 여천산단과 달리 수산업에 종사했던 많은 사람이 바다오염과 수산자원고갈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는 여수통계연보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과거 50%를 넘었던 농림어업종사자는 38%로 줄었고, 제조업 종사자는 8-11%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여수지역의 경기는 바닥을 헤매고 있는 지경이며 경기회복을 위한 방안을 거의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산인들은 여천산단이 입주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생산액보다 매년 수백억원 이상의 수산물이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경제의 중추산업이 수산업이었던 지역민들이 가지는 피해의식은 상대적으로 크다.
그럼에도 여천산단 입주업체들은 지역에 대한 기업이윤 환원에서 인색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여천산단 입주업체들이 작년 여수대에 보내왔던 취업추천서의 양으로도 한눈에 알 수 있다. ＬＧ칼텍스정유에서 보내온 비서직 여직원 한명, 이런 상황에서 여천산단이 지역인재육성을 위해 배려하고 있다고 말하겠는가.
이 뿐만이 아니다. 여천산단 입주 대기업 중, 본사를 여수에 둔 업체 또한 전무하며, 한국 바스프만 본사를 여수에 두고 있다.
여천산단 세금4조7천억원을 가져가는 중앙정부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로 인해 지역민들은 여천산단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불신도 날로 커지고 있다.
국가의 중추산업을 유치하고도 소외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턱없이 모자라는 이주대책비, 환경오염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보상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 지역경제의 끝없는 침체, 한가닥 희망으로 내걸었던 2010년 세계박람회에 대한 중앙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독일 바스프사의 외자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법에 제시된 주민의견수렴 절차 없이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했다’는 언론보도는 지역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여수시가 15억원을 부담해야 하고, 수년간 지방세도 제대로 징수할 수 없다는 소식은 반대운동에 계기를 만들었다.
산단과 지역민들의 갈등 정부가 나서야
바스프사 문제는 단순한 유치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민들이 국가와 산단을 상대로한 생존권 확보 문제로 비화되고 있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자구적 투쟁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제 중앙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정부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투자유치에 계속 말썽의 소지가 있다.
종합적인 정밀안전진단 실시하자
바스프사 TDI공장 증설 문제는 반대세력과 찬성세력, 해당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바스프사가 입주하느냐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천산단 전체가 어떻게 안전을 확보하느냐가 문제다.
따라서 정부, 관련기관, 자치단체, 시민, 전문가를 망라한 점검반을 편성해 여천산단의 모든 공장에 대한 종합적인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공장은 가동 중단되어야 한다. 모든 공정을 중지하고, 안전확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여천산단의 안전이 신뢰받지 못하는 한, 또다른 공장 증설, 신규공장 유치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여천산단에 대한 종합적인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가동을 중지할 업체와 계속 가동해도 될 업체를 분별해 내야한다.
한국바스프사의 TDI공장 신설과 MDI공장 증설반대는 시민들이 정부의 이주·안전대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에서 기인하므로, 바스프사 투자여부는 지역발전의 긴 안목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실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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