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죽도의 옛 이름은 '손대섬'이다．섬주변으로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잘 알려진 시누대가 많아 '시누대섬'이라고 하여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발음이 비슷한 손대도(巽大島)로 기록하였다고 전한다.

"손죽도의 땅이름에는 아름답고 순박한 토박이말이 상당수 남아 있다. 이름만 들어도 땅의 모양을 알 수 있다"

'독 보듬고 돈디' 인디언 이름과도 같은 이 말은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에 전해 오는 지명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돌(바위)을 안고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독 보듬고 돌고 나면, '손잡고 돈디'를 만나게 된다. 해변의 바위절벽을 돌아가기 위해선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만 하는 곳에 붙여진 이름이다.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해변 곳곳을 다녀야 하는데 절벽으로 가로막혀 넘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다 손만 잡아주면 돌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택걸이'의 기발한 발상에 이 섬사람의 기지에 놀란다. 이 지역은 절벽이 심하여 독을 보듬는 정도로는 건널 수가 없고 턱을 바윗돌에 괘고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고 건너는 곳이라니 짐작이나 할 수 있는가?

'옆걸음'도 재미있다. 해안지역 바윗길이 좁아서 정면으로 지나갈 수가 없어 옆 걸음질로 걸어가야 하는 곳에 이름 붙여졌다. '들개머리'란 곳과 '목넘'지역에 이런 지형이 있어 들개머리 옆 걸음과 목넘옆걸음으로 부른다.

'지지미'에 이르면 압권이다. 화전놀이가 유명했던 손죽도는 요즘 같은 참꽃이 만개한 삼월 삼짇날 즈음이면, 산등성이 꽃밭에서 꽃전을 부쳐 먹으며 춤과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벌였다. 화전놀이를 경험했던 노인들 중에는 산등성이 화전(花田)에서 일주일 이상 밤낮을 쉬지 않고 화전놀이를 했다는 경험담을 자랑하곤 할 정도이니 그 규모와 열정이 짐작된다.

이런 화전놀이터가 있던 지역 이름이 '지지미' 이다. 여수지역에선 화전을 보통 부쳐서 먹기 때문에 '부쳐리'라고 하고 지져먹는다는 뜻으로 '지지미'라고도 하는데 꽃전의 다른 이름인 지지미가 땅이름이 된 것이다.

지나던 배가 바위 사이에 끼인 사건이 있었던지 이곳은 '배 찡긴디'라 하고 바위 위를 지나면 덜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덜걱더리'라 하였다. 곧게 벋은 길이 길게 이어지는 곳은 '진걸음' 물이 내려오는 골짜기는 '물래골' 산중턱을 돌아 내려가는 곳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내려닿는 디'라고 부른다.

지형 한번 보고 나서 이름 한번 들으면 다시는 잊지 않게 될 땅이름들이다. 비교적 여수 지역의 땅이름은 타 시도(市道)나 도회지역에 비해 한자말이나 외래어의 영향을 적게 받은 곳이어서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을 많이 접해보지만 손죽도의 땅이름은 경이롭다.

배를 내리자마자 만난 땅이름이 '배댄머리', 마을 앞 해변은 '집앞'이라 불렀다. 물이 말라있는 해변을 '보튼기미'긴 자갈밭은 '진짝지', 짧은 이름 안에 땅의 모양을 헤아려 볼 내용이 담겨있는, 말의 최대공약수였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서 조개더미까지 발견하게 되자 함께한 일행 모두에게 작게만 보이던 섬이 갑자기 더 크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손죽도의 옛 이름은 '손대섬'이다．섬주변으로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잘 알려진 시누대가 많아 '시누대섬'이라고 하여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발음이 비슷한 손대도(巽大島)로 기록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 왜구의 출몰이 잦자 녹도만호로 부임한 청년장군 이 대원이 인근 바다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왜구가 다시 인원을 증강하여 쳐들어오자 지원을 요청하고 앞서 나가 대항하던 이대원은 전공을 시기하였던 전라좌수사 심암이 지원군을 보내지 않아 손죽도 인근 해상에서 왜구에게 목이 베어 전사하게 되었다. 사건 후 사람들은 대원을 잃었다는 뜻으로 손대도(損大島)로 불렀다고 전해왔다．　

손죽도의 진가는 마을 주민을 만나면서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 여건이 장구한 세월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은 전설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원형을 간직하여 유지하고 있다．

옛날 섬사람의 생활의 단면을 전해주는 구비문화 중 다양한 노래가 많은 것도 이 섬의 특징이다.

고기를 잡는 남성과 전복과 소라와 조개를 잡았던 여성의 이야기가 노래에 담겨있으며 섬사람의 애환과 즐거움이 노래에 묻어난다.

조기잡이를 떠나고 대부분의 남성이 떠나버린 아낙들은 지지미 들녘에서 몇 날이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즐기면서 고기잡이 떠난 남편의 무사안녕을 빌고 어려운 살림살이의 애환을 노래에 담아서 불렀다.

손죽도의 땅이름에는 아름답고 순박한 토박이말이 상당수 남아있다. 이름만 들어도 땅의 모양을 알 수 있는 땅이름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어, 우리 겨레가 우리말 땅이름을 써야 하는 이유를 삶의 터전으로 보여준다.

토박이말로 된 땅이름은 이름이 생긴 본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할 수가 있고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도 단번에 기억할 수 있다.

하늬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 '하늘담', 샛바람이 부는 마을 - '샛담', '송곳여', '코바우' 설명이 없어도 그곳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이름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이 조금씩 잊혀 가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도시의 간판이 외래어로 도배가 되고 새롭게 건설되는 모든 시설물들이 뜻도 모르는 언어들로 이름 지어지는 현실에서 손죽도의 땅이름은 아름답고 고운 우리 이름들이 생활과 연결되던 기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어서 반갑다.

박종길  yeos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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