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당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단절하기 위해 한반도의 중요 혈자리마다 철침(鐵針) 및 목침(木針), 석침(石針) 등 다양한 재료을 이용해 땅의 정기를 끊었다는 설은 그동안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이에 관한 정확한 문헌이나 자료가 나타나지 않아 침(針)의 목적에 대한 설이 분분했다.
▶침은 표지로 삼기 위해 사용됐던 것
재야 사학자인 이이화(역사문제연구소 고문)씨는 자신의 저서 「역사풍수기행」을 통해 “일제 당국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의 지도·해도를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으며 지도작성 과정에서 산마루에 쇠말뚝을 박아 표지로 삼았던 것으로 풍수쟁이들이 엉뚱한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보인다”란 주장을 펴고 있다.
▶민족정기를 끊기 위한 풍수침략
이러한 주장에 대해 소윤하 한배달 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은 “현장 탐사를 해보지 않은 책방 선생의 일방적 편견”이라며 강하게 비난하며 “일본인들이 측량용으로 표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쇠말뚝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 일제가 풍수침략용으로 박아놓은 쇠말뚝임이 분명함은 현장이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적공사와 국립지리원에서 확인한 결과, 측량이나 표지를 위해 쇠말뚝을 박은 적이 없다”는 회신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사회일반이나 학계에서는 후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경대학교 서길수 교수도 자신의 최근 논문 「일제의 풍수침략사」에서 “한국인들의 풍수적 정서를 역이용해 우리나라 국민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전국 산천의 명당 자리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지기(地氣)를 끊어버리는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전국의 명당을 찾아 일제가 박은 혈침은 그 효과여부와 상관없이 ‘이제는 장수가 나지 않는다’ ‘큰 인물을 기대할 수가 없다’ ‘명산의 혈(穴)을 다 끊어버렸다’는 등 우리민족이 자학과 패배감에 젖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획적이였던 일제의 풍수침략
1931년 조선 총독부의 촉탁으로 ‘조선의 풍수’를 쓴 무라야마 지준은 ‘한국 문화의 이면적·근본적인 현상의 하나가 풍수’ 라고 밝히며 ‘적어도 십수세기란 오랜 기간 한국 민속신앙 체계에서 그 지위를 점해 왔고, 고려를 거쳐 이조에서도 반도 어디를 가나 믿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로 일반에 보급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므로 타문화에 비해 그 지지의 강함과 폭이 넓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총독부는 조선의 풍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일본의 알려진 풍수학자들이 한반도의 혈에 대한 조사와 풍수지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식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풍수침략의 완벽한 자료로 쓰였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남한 1백83개, 북한 1백82개 박혀있는 것으로 추정
전국적으로 박혀있는 혈침의 숫자는 필리핀 전쟁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어 사형 당한 일본군 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통역관인 신세우 씨에게 남긴 말로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야마시타 대장은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남한에 1백83개, 북한에 1백82개 등 모두 3백65개의 혈침이 박혀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관한 정확한 문헌이나 자료가 없는 관계로 제보에 의존해 현장확인을 거쳐 혈침이라 판명되면 제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뽑아낸 혈침은 약 70여개에 이른다. 혈침을 뽑아낸 곳도 다양하며 풍수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다.
▶명산, 명혈에는 침이 박혀있다
95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에서는 산아래서 보면 용의 뒷목에 해당되는 곳에서 두 개의 혈침을 뽑았다. 백두대간이 뻗어가면서 고개를 만드는 곳으로 경상·전라·충청 3도의 지기가 통하는 추풍령 고개에서도 쇠말뚝을 뽑아냈다.
풍수학상 제왕(帝王)을 낳을 만한 귀격의 산으로 알려진 경북 구미의 천생산(天生山)에서도 쌍룡사 암자 뒤 석굴에 박힌 쇠말뚝 하나가 발견돼 제거됐다.
서울 창덕궁 인정전 뒷산(백악산 끝자락) 지하 18m에 인위적으로 만든 견고한 화강암재 석침 7개가 발견되어 제거됐다.
이외에도 명산, 명당자리라 불리는 곳마다 수많은 혈침이 박혀있었다.
쇠말뚝 이외의 풍수침략도 다양했다. 신성한 창경궁을 공원화 했으며 부여의 용머리는 아예 파괴해 버렸다. 또한 중앙청 건물은 혈침 24개를 박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버리기도 했다. 현 서울시청의 땅 밑에도 아직 혈침이 있다는 설이 있다.
▶특히 여수는 곳곳이 혈침에 유린당해
이외에도 전남 진도, 목포 유달산, 충북 단양 등 수많은 곳에서 혈침이 발견돼 제거됐다. 여수에서도 개도, 소리도에서 혈침이 발견돼 지난해 4개를 뽑아냈으나 아직 1개가 남았으며 이번에 발견되어 제거에 들어간 12개의 백도 혈침 외에 금오도에서 추가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에서 혈침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한반도를 8자 형태로 돌고 있는 정기의 혈구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예산지원 이번에도 공수표
이렇게 전국에서 속속 혈침이 발견되고 있지만 제거는 쉽지않다. 혈침제거에 민간단체만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백도 혈침제거 사업에 정부의 예산지원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소윤하 회장도 막상 예산지원이 공수표로 돌아가자 실망한 얼굴빛이 역력하다.
소 회장은 지난 84년 백운대에서 뽑아낸 혈침 15개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던 사건을 들며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혈침제거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이고, 오히려 풍수, 미신으로 매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친일 행각 언론의 글발은 더 매서워
이러한 정부차원의 소극적 지원 외에 친일 보수언론의 글발도 매섭다.
과거 친일행각을 벌였던 조선일보도 95년 당시 「월간조선」을 통해 당시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쇠말뚝 제거사업과 일제가 개악한 고유지명 찾기 등 정부 주도로 벌였던 민족정기회복사업을 비난하고 나섰다. 월간조선은 ‘독립기념관 제3전시관(일제침략관)에 전시중이던 쇠말뚝도 일제가 풍수침략의 목적으로 박았음을 입증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이러한 주장에 가세했다. 조선일보는 2000년 4월, 일본의 대표적 우익신문인 산케이신문의 한국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글을 실었다.
그는 [일제 쇠말뚝 전설의 부정]이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월간조선 1995년 10월호의 조사보도 「김영삼 정부는 풍수정권인가」는 저널리즘으로서의 진수를 발휘한 뛰어난 기사였다’고 평하고, ‘(월간조선에 실린)기사는 결과적으로 「한국은 풍수국가가 아니다」는, 풍수설을 부정하는 것으로, 21세기를 향한 한국 및 한국인의 명예를 구했던 것이다’고 주장했다.
▶자학,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제거 마땅
하지만 혈침이 비합리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민족은 언제부터인가 ‘혈침으로 인해 민족정기가 끊겨 큰인물이 나기 어렵고, 나라가 강성대국으로 커 가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자학과 패배의식에 젖어있다.
효과 여부를 떠나 우리민족이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혈침은 제거되야 마땅하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침략과 수탈로 고통받았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일제의 풍수침략으로 가슴 한편에 자리잡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제 혈침은 제거되야 한다.
물리적 일제 청산도 중요하지만 감정적, 심리적 일제 청산 차원에서라도 혈침은 제거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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