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의 가장 오래된 마을 서도리의 주변에는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명소가 많다. 주민들이 사슴을 닮았다 하여 '녹새이'라고 부르는 녹산(鹿山)도 그 중 한 곳 인데, 산자락 끄트머리에는 새하얀 등대가 있어 더 아름답다.

"거문도 사람은 '신지께'를 다 알아. '신지께'를 모르면 거문도 사람이 아니지"

거문도의 가장 오래된 마을 서도리의 주변에는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명소가 많다. 주민들이 사슴을 닮았다하여 '녹새이'라고 부르는 녹산(鹿山)도 그 중 한 곳 인데, 산자락 끄트머리에는 새하얀 등대가 있어 더 아름답다.

1958년 1월 뱃길을 밝히기 시작한 녹새이 등대는 북위 34° 03′ 6″ , 동경 127° 17′ 7″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달거리가 5㎞인 무인 등대이다. 등대 아래로 바라보이는 수직절벽은 오금이 저려오게 아찔하지만 멋진 풍경에 낭떠러지 길로 쭈뼛거리도록 여행객을 유혹한다.

녹산등대 가는 길 왼쪽에는 아늑하게 자리잡은 만(灣)이 반달처럼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이끼미'라고 부른다. 아담한 규모의 백사장도 있어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사용되어 '서도해수욕장'이나 '이끼미'를 한자로 표현한 '이금포해수욕장', '이끼미해수욕장'으로도 소개가 되는 곳이다. 이 곳에 '신지께'라는 신비한 생명체가 나타난다는 바다의 암초 '신지께 여'가 있다.

"그날도 새벽 일찍 바다로 나가는 길이었어. 달이 남아서 밤이라도 밝았는데, '신지께여' 있는 데서 달빛에 반사되는 뭔가를 보았지. 검게 보이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람피부처럼 반짝였는데 아래는 고기처럼 생겼어! 무섭기도 했지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어!…그 뒤에도 멀찌감치서 한 번 더 본 적이 있었지. 거문도 사람은 '신지께'를 다 알아. '신지께'를 모르면 거문도 사람이 아니지. 어려서 미역을 감다가도 '신지께'가 온다 그러면 부리나케 뭍으로 나왔지. 신지께는 물 밖으로 못 나오니까 물 밖으로 세 걸음만 나오면 못 잡는다고 얼른 세 걸음만큼 튀어나오는 거야. '신지께' 그거 물귀신이지 물귀신! 태풍이 올려고 할 때 백도 같은 데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피하라고 돌을 던지고 그랬다 하데"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다 여수시 주삼동으로 주소를 옮긴 김동진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신지께를 보았다고 동네 소문이 나서 그를 만나 들어보았던 경험담이다.

"거문도 태생인 아버지가 25~6세 때인 1939~40년에 삼치 마기리(줄낚기)를 하기 위해 매일 축시(丑時 :새벽1~3시)에 네 사람이 노를 젓는 배로 주로서도 녹사이 부근으로 나갔다. 나갈 때마다 같은 곳에서 하얀 물체를 보았다.

그 전부터 어른들로부터 '신지께'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터라, 그게 필시 신지께려니 하며 주의 깊게 쳐다보았는데 그 형상은 조금 먼 곳에서 보면 물개와 같은 형상이나 가까운 곳에서 보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팔과 가슴이 여실한 여인이 틀림없었다. 하체는 고기 모양이었지만 상체는 사람 모양을 한 인어였던 것이다. 달빛 아래 비추인 인어의 모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남해안의 절해고도 거문도에는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신지께'라는 인어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니 누구도 인어라고 부르지 않고 '신지께'라고 불렀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반인반어인 인어의 이야기이다.

신지께상과 녹색등대.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젊은 여인의 나상을 한 상체에 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는 하체의 모습이라니 어린 시절 들어 보았던 안델센의 인어 이야기가 아닌가?

이밖에도 나이가 많은 주민들은 무래질을 하면서 신지께의 형상을 자주 보았다고 하였는데 주로 달이 있던 새벽녘에 신지께여에서 마주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신지께를 귀신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유식한 노인은 물개가 달빛에 반사되면서 착시현상으로 그렇게 보았을 것이란 과학적인 분석을 곁들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서도리에서 신지께라고 부르는 걸 덕촌에서는 '흔지께'라고 부르는데 신지께나 흔지께는 그 형상이 하얗게 생겼다고 한다. 여름철 미역을 감던 어린이들에게는 물귀신처럼 무서움을 주는 존재였지만 큰바람이 불 적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을 던지거나 휘파람 소리를 내어 주어 바람을 피하게 하는 이로운 귀신이요 거문도의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신지께는 거문도, 동도, 서도 세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에서는 나타난 적이 없고, 녹새이 같은 섬 밖에서만 출현했다고 한다. 때로는 거문도 죽촌마을 넙데이 해안의 절벽 위에도 나타났다고 하며, 백도의 해안가에도 형상은 보이지 않게 자주 출현했다고 한다. 해상에 나타난 신지께는 배를 쫓아오고, 절벽 위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돌멩이를 던져 훼방을 놓았다고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바다에 나갔다가는 반드시 큰바람을 만나거나 해를 입었다. 신지께가 나타난 이후에는 틀림없이 풍랑이 일거나 폭풍우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최근 서도리의 녹새이(녹산) 언덕위에는 인어공원이란 이름으로 신지께의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인어는 사람을 닮은 고기라는 뜻인데 신지께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박종길  yeos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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