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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비늘이 아름다운 갈치나 멸치는 거문도에서 많이 잡히는 주요 어종으로 밝은 불빛을 좋아하는 특성을 이용하여 밤에 불을 켜고 고기잡이를 한다.
지금처럼 전등이나 석유가 없었던 옛날에는 소나무의 송진이 굳어서 만들어진 관솔에 불을 붙여 고기를 유인하였는데 거문도의 내해는 고기잡이배들이 밝히는 붉은 횃불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귤은 선생도 당시의 아름다운 밤바다의 경치를 ‘홍국어화(紅國漁火)’라 이름 짓고 노래 불렀다.
‘홍국어화(紅國漁火)’
맑은 물결 발에 비춰 붉게 물들었는데
물살 위 조각배는 동서로 오가네
물가를 단장한 꽃 그림자 예쁘니
강루의 밤마다 봄 기분 느끼누나!
아름답고 평화롭던 한적한 어촌이 격랑에 휩싸이게 된 것은 서구열강이 동북아시아까지 진출을 위해 각축을 벌이던19세기 중엽이었다.
1885년 4월15일 러시아의 조선반도 진출을 저지하려던 영국군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는 거문도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태평양으로 진출을 꾀하던 러시아는 전략적 요충지가 필요했으며, 조선에 접근하여 1884년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활발한 외교활동을 통해 조선에서 친러 세력을 확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행동에 민감한 태도를 보인 나라는 그동안 조선에서 세력적 우위를 선점하고자 했던 청과 일본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 또한 러시아의 조선 진출에 대하여 방관할 수 없었다. 이에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청의 양해 하에 군함 6척과 상선 2척으로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밀턴 항(Port Hmilton)이라 부르고, 병영을 세우고 포대를 쌓는 등 영구적인 주둔을 계획하였으나 청의 중재 등의 외교적 노력으로 1887년(고종 24) 2월 27일 거문도를 점령한 지 22개월 만에 철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주둔중 사망했던 병사들의 무덤중 일부가 지금도 거문리에 남아있다.
외세의 침탈과 함께 관솔로 불을 비추던 밤바다의 횃불은 일제강점기에는 카바이드 불로 바뀌었고 다시 석유등잔을 거쳐 전기를 이용한 전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붉은 빛의 나라를 이루었던 홍국어화 등꽃은 불이 밝아질수록 줄어들었다.
내해에서 잡히던 멸치나 갈치 같은 바다고기들이 어구의 발달과 남획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옛날 거문도에 흉어가 들어 주민들이 어렵게 살아가게 되었다. 갑자기 고기가 잡히지 않는 변고에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용왕제를 지냈다. 그랬더니,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음 날, 폭풍우가 멎고 나서 큰 바위 하나가 덕촌마을 앞 바다 위로 둥둥 떠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용왕이 이 바위를 보낸 것으로 믿고, 이를 유림 해수욕장 앞에 있는 ‘안노루섬[內獐島]’ 정상에다 신체로 모시고 제사까지 지냈다.그 해부터는 다시 고등어가 많이 잡혀 주민들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돌을 고두리 영감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고두리는 한자어 고도어(古刀魚) 혹은 고도어(高刀魚)에서 온 말로, 『동언교략(東言巧略)』을 보면 고동어(高同魚)와 같은 뜻으로 적고 있다. 고두리는 고등어이다.
지금도 안노루섬 정상에는 이 때 덕촌마을로 둥둥 떠 왔다는 부석이 모셔져 있다.
해방 직후 거북이 한 마리가 상처를 입은 채 ‘갓지미[변촌]’ 해안으로 간신히 올라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 거북이가 가엾기도 했지만 안주 삼아 잡아먹어 버렸다. 그런 뒤 얼마 못 가서 마을에 변고가 생겼다. 고기가 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때야 용왕의 사자인 거북이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라며 서둘러 이를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제사를 지낸 후부터는 갈치가 아주 잘 잡혔다고 한다.
먼저 이야기는 고두리영감제가 열리던 덕촌마을의 전설이며 다음이야기는 용왕제가 열리던 변촌마을의 전설이다.
거문도에서는 매년 음력 4월 15일마다 어김없이 고두리 영감제행, 풍어제, 용왕제, 거북제 네 가지 행사를 하루에 치르고 있다.
처음에는 거문도, 동도, 서도에서 마을별로 따로따로 지내 오다가, 얼마 전부터는 수산업협동조합이 주관해 합동제례 형태로 행한다.
박종길 yeos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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