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빚은 해운업체의 이름이 ‘청해진 해운’이다. 이 이름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지역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완도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청해진은 장보고 대사가 828년에 오늘날 완도에 세운 수군기지이며 한중일 해상무역을 독점했던 국제자유무역기지로 명성이 알려진 ‘지명’을 해운업체의 사명으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이 ‘완도출신’이라고 믿는 이도 생겨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완도 출신 출향인들을 ‘유병언’과 똑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병언은 청해진 완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인 1946년 부모를 따라 대구로 이주했었다.

유병언 회장이 1985년 4월 서울시로부터 한강유람선 사업승인을 얻은 것을 계기로 해상운송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사업체는 유독 배와 관련된 것이 많다. 게다가 세모해운은 한때 국내 연안여객선의 70%를 장악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세모그룹(식품·조선·전자·해운·케미컬)이 1997년 8월 수천억 원대의 부채를 안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유병언은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의 신도와 차명법인 등을 앞세워 10년 만에 ‘세모왕국’을 재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법정관리 제도인 채무탕감 수단을 악용했다. 그가 부동산 1850여억원 등 자산가치 5600여억원의 세모그룹을 재건하는 데 투입한 돈은 373억원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기업경영을 한 것이 아니라 온갖 편법과 탈법으로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문어발 확장에만 신경을 썼던 것이다. 더욱이 낡은 배를 헐값에 사서 운항하면서 매번 잦은 고장과 사고가 빈번히 발생해도 개선하지 않고 강행하다가 이번에 엄청난 대형 사고를 터뜨린 것이다.

이번 세월호의 침몰사건으로 속속 드러난 것은 승객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화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선장과 선원들이 아예 승객들을 구조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방송시설과 무전기, 비상벨, 전화기 등을 사용하여 배가 침몰하고 있으니까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라는 안내방송만 했어도 대다수의 승객들은 구조되었을 것이다. 안내 방송만 잘했어도 살릴 수 있는 승객들을 외면하고 자신들만 살아남으려고 필사의 탈출을 하는 장면을 볼 때 온 국민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분출하고 있다.

유병언은 자신이 세운 해운선사의 이름을 청해진으로 차용한 것은 장보고 대사가 한중일 삼국의 해상무역을 독점하는 등 번창했던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기업경영은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면서도 급여와 경영컨설팅, 상표 값으로 매월 수천만원 씩을 빼내면서 종업원들에게는 쥐꼬리만한 월급만 줬다. 또한 유병언 회장이 그동안 과적과 증축으로 인한 복원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개선하지 않고 운항을 강행하는 등 악덕 기업주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청해진은 탐욕에 찌든 기업주가 함부로 쓸 수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장보고가 세운 ‘청해진’은 일반적인 작명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청해진은 흥덕왕이 서남해안에서 밀무역을 자행하던 해적을 소탕함으로써 조세를 징수하고 더 나아가 신라에서 생산된 상품을 자유롭게 수출하기 위해 장보고 대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생겨났다. 따라서 ‘청해’는 ‘바다를 깨끗하게 한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즉, 해적들이 신라 양민을 당나라 팔아먹는 등 해상질서를 어지럽혔던 것을 장보고 청해진 대사가 제해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장보고와 그의 상단이 당나라와 일본간의 민간무역을 세계 최초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청해’, 제해권을 확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병언 회장은 청해진의 고유명사를 해운선사의 사명으로 쓰는데 급급하지 말고 그 단어 속에 담겨진 의미를 새겼더라면 이번 세월호의 침몰로 ‘그의 왕국’이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상석 발행인  jangpo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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