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과 호남

황상석
승인 2014.08.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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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은 그동안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성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으로 재탄생하게 만든 역작이다. 최민식과 류승룡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대결은 물론 김한민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 역대 최단시간(12일)에 1천만 관객을 모았다. 이러한 열풍으로 보면 조만간에 7위를 마크했던 실미도보다 더 앞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이같은 파죽지세로 보면 조만간에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된다.

영화 ‘명량’의 열풍이 새로운 ‘이순신’의 신드롬을 낳고 있다. 이는 명량해전이 발생했던 1597년에서 417년 만에 찾아온 ‘기적’이다. 그동안의 이순신 장군 이미지는 성웅의 기개를 가진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옥포해전은 물론 한산도 대첩 등에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일본수군과 맞서 싸워 전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쟁의 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명량’에서 찾은 이순신은 부하들 앞에서는 용맹하고 강한 장수이지만 아들 앞에서는 더 없이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이며 혼자 있을 때는 두려움과 압박감으로 눈빛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인한 장군의 모습에는 희망과 절망, 용기와 두려움, 외로움에 떠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한민 감독은 왜 ‘명량’에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무고로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한 뒤 백의종군으로 군무에 복귀했을 때의 이순신 마음은 처연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모친의 죽음은 그에게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겨줬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일본수군과 싸워 연전연승을 기록했을 때 동고동락했던 전라좌수영 및 전라우수영의 주력부대원들이 원균이 이끌면서 칠천량 해전에 참전, 일본수군과 싸워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천지가 무너지는 슬픔을 겪었을 것이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이순신의 마음은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었다.

이순신은 판옥선 12척밖에 남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에서 일본 수군을 유인한 곳이 진도와 해남을 사이의 울돌목이었다. 이곳은 워낙 물살이 빠른데다 암초가 많아 천혜의 요충지였다. 그는 ‘죽고자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하는 자는 죽는다’는 각오아래 전함 12척으로 330여척이 넘는 일본수군과 싸울 각오를 다졌다. 대부분은 싸워보지도 않고 기가 질려 도망을 갈 궁리만 찾았을 것인데 이순신장군은 절망에서 기적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을 것이다. 330척이 넘는 일본 전함이었지만 울돌목 좁은 곳을 통과한 배는 100여 척. 일본 전함의 숫자에 기가 눌린 조선 수군들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순신은 혼자 그 많은 적함과 싸웠다. 그는 이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군인의 정신으로 적을 물리쳐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것이다.

이번 ‘명량’ 영화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 외에 호남인들의 ‘희생과 역할’을 조명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수군과 싸워 전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라좌수영 백성들의 전폭적인 후원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당시 호남전역에서 들불처럼 봉기했던 의병들이 껴져가는 조선을 살리는데 앞장을 섰다. 그러나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그동안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면서 외면당했다.

마지막으로 영화 ‘명량’은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들이 느꼈던 ‘참담함’을 심리적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세월호 침몰은 ‘돈벌이에 급급한 해운선사, 돈을 받고 무리한 증축을 승인한 선박감독, 승객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쳤던 선장과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합작해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들을 비롯해 300명 넘은 소중한 인명들을 희생시켰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긍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는 구조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수 백명이 수장되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스스로 죄인‘이라는 자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명량은 질수밖에 없는 ’형편없는 전력‘으로 막강한 일본수군을 섬멸하는데 앞장섰던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희생정신과 충성심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었던가를 잊고 있었음을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