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국왕의 유모를 종1품 봉보부인(奉保夫人)으로 봉하는 제도가 있었다.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정2품)보다 높은 자리였다.

연산군은 유모 최씨를 봉보부인으로 봉하고 7명의 노비를 하사했으며 최씨의 친척 62명을 천인에서 양인으로 올려줬다.

홍문관 직제학 표연말이 직언했다.“유모를 우대하는 것이 지나치고 절도가 없으니 교만하고 방자해질 것이다. 그러면 결국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경고 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작첩을 거두고 친척들의 범위도 좁혔다.

박근혜 대통령을 “언니”라 부르는 최순실씨가 국정을 농단 했다는 뉴스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지만, 표연말처럼 직언을 했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관료들은 연산군 시대만도 못하단 말인가

거국내각은 위험하다

야당의 거국내각 제안을 여당이 받자, 야당들은 바로 거부했다. 거국내각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정치가들로 이루어지므로 국정혼란으로,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사태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한다. 

1930년대 프랑스 피에르 총리가 사임한 뒤 다음 선거까지 기능할 거국내각을 좌파, 중도파, 우파 등으로 구성했다. 어떤 정책도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

1936년 3월 히틀러가 프랑스를 공격하자, 프랑스 거국내각은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못했고 히틀러의 도박은 성공했다.

당시 라인 강을 건넌 독일군은 3개 대대뿐이었지만, 독일군의 5배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프랑스군은 이들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고, 결국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되었다.

거국내각은 그럴 듯하지만, 역사에서 성공한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당파싸움이 심하고 남북이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위험하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의 뜻이 아니라 개인의 뜻에 따라 행사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라는 취임 선서를 배반했다.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지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도 않았다는 국민적 의혹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배반이고 헌법에 대한 배반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이다. 국민의 공분(公憤)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도덕과 신뢰를 잃었으니 국가통수권자로서 자격이 없다. 그래서 “하야(下野)해야 한다”는 함성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견제와 감독을 소홀히 한 국회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시대적 전환점에 한 여인의 게이트에 빠져 나라가 허우적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차분한 과거정리와 착실한 미래준비다.

법대로 하자
대한민국은 이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국가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야권에서 요구하는 권한 이양이나 하야 주장도 문제 여지가 많다. 대통령의 권한은 그것이 이양을 선언한다고 해서 이양되는 것이 아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행사된다. 국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부인하려면 대통령이 내란이나 외환죄를 범했을 경우에 한정한다. 즉 국회는 탄핵을 통해서만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

대통령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권위에 깊은 상처를 받은 상태다. 그렇다고 이를 이유로 헌정질서를 초월하는 초법적 정치상황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법치의 기본질서요 헌정의 안정이다. 대선주자들은 당장 퇴진․하야 하라고 한다. 대안도 없이 혼란을 부추겨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무엇이 국가이익에 부합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적 열망을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현실의 정치질서로 만드는 것은 법치에 기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탈법적 행위들은 아직 본격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검찰에서 수사를 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법대로 처리 하면 된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모든 국가 기구와 공직자, 그리고 국민은 민주공화국의 성전(成典)인 헌법의 정신에 따라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데스크  yeosun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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