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거지악이라고 하여 전통시대에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가지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일곱가지 내용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중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다.

가문의 계승이 아내 또는 며느리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되던 당시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이혼법령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현대 과학의 시각으로 볼 때 과학적 근거가 전무한 미개한 법령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도 난임 부부가 있었을 것이고 그 원인이 전적으로 아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식의 성별은 X 염색체를 가진 난자가 X 또는 Y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수정이 되어 결정되는 것이니 성별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부장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난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시선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반대로 난임에 대한 남성 요인은 그만큼 간과되고 있는데, 최근 환경 변화 및 유전학적인 영향 등으로 남성 난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남성 난임 검사는 기본적으로 정액검사를 시행한다. 정액검사에서 이상이 있는 경우 보다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호르몬검사나 고환 조직검사 등 다른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정액검사에서 이상이 없는 경우 추가적인 다른 검사가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남성 난임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인이 어떠하던 결과적으로 정자의 수 감소나 운동성 저하, 모양 변형 등 정액 상태의 이상을 초래한다.

정액검사에서는 정액의 양, 정자 수, 정자 운동성 및 정자의 모양 등의 항목을 확인하는데, 각각의 항목에 대해 정상 기준이 정해져 있다.

1년 이내에 임신에 성공한 남편들의 정자를 채취하여 각 항목의 하위 5%를 정상 기준으로 삼는데, 정액검사가 정상 기준 보다 낮다는 것은 정액의 상태가 정상적으로 임신이 된 남성의 하위 5% 보다 불량하다는 뜻이고, 정상 임신의 확률이 그만큼 저하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WHO에서는 이 기준을 2009년에 개정하였는데, 2009년 기준이 이전의 기준보다 훨씬 완화 되었다. 정상 기준이 완화되었다는 것은 남성들의 정액 상태가 전반적으로 나빠졌음을 의미한다. 

평소에는 90점은 받아야 반에서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반 전체 성적이 나빠지면 80점만 받아도 1등을 할 수 있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남성들의 정자 질 저하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으로 원인에 대한 연구가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자 질 저하를 초래하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활성산화물질이 거론되고 있고 이를 억제하는 항산화물질의 섭취가 정자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전자파나 높은 온도, 흡연, 체지방 등의 환경 및 생활 습관의 요인이 정자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 결과 중에 유전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남성의 정자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인간의 성염색체는 두 개가 존재하고 남성은 XY, 여성은 XX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Y 염색체는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염색체로 Y 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는 대부분 정자 형성이나 생식에 관계된 작용을 한다.

따라서 Y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 남성 난임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Y 염색체는 남성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에 부계 유전을 한다. 염색체는 세포의 노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게 되는데, 쌍으로 존재하는 다른 염색체와는 달리 Y 염색체는 한 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손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적다.

또한 부계 유전을 하기 때문에 Y 염색체에 형성된 손상은 후대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된다. Y 염색체는 대응되는 성 염색체인 X 염색체에 비해서 그 크기가 훨씬 작고 포함하고 있는 유전자도 훨씬 적은데, 오랜 세대를 거치면서 Y 염색체의 유전정보가 소실된 결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Y 염색체의 소실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500만년 후에는 인간에게서 Y 염색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500만년 후의 일을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러한 Y 염색체의 손상이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남성의 생식능력 저하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포유류의 대부분이 번식을 위해 암수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은 후 각자 또 번식을 위한 다른 짝을 찾는 반면에 인간은 한명의 짝을 만나 자녀를 낳고 자녀의 양육을 남녀가 함께 감당한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이와 같이 일부일처를 바탕으로 한 가족을 기본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지금도 일부 국가 또는 일부 원시 부족에서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제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류사회는 원시시대 이래 기본적으로 이러한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여 발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일처제의 구조가 정자의 경쟁력에 있어서는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를 하는 다른 포유류의 경우 암컷의 체내에는 여러 개체로부터 나온 정자들이 진입하게 되며, 이 중 경쟁을 거쳐 가장 건강한 정자가 수정을 하게 되므로 보다 건강한 정자의 형질이 후대에도 전해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한명의 배우자로부터 나온 정자만이 수정에 참여하게 되므로 경쟁을 통해 우등한 형질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포유류로 알려진 침팬지의 경우 유전자의 차이는 1% 정도인데 침팬지의 정자는 인간의 정자에 비해 꼬리가 길고 운동성이 좋으며, 그 수도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남성 난임은 생활환경이나 개인적인 습관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유전학적, 인류학적 관점에서도 남성의 생식능력은 점점 저하되고 있다. 언젠가는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남성 난임의 문제에 대해 지금부터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또한 남성 난임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전 세계 남성 전체의 공통적인 문제라는 사실은 남성 요인의 난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에게 어쩌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다.

데스크  yeosun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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