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필자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문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주부들이 즐겨 듣는 오전 시간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난임 특별기획으로 청취자들의 전화 상담도 받고 생방송으로 난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중에 진행자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난임과 불임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요?”

난임에 대한 오해는 일반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선생님, 저는 불임은 아니고 그냥 난임인거죠?”

난임과 불임이 용어가 다를 뿐이지 의학적인 개념은 같은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무언가 더 희망적인 대답을 듣기 원하는가보다. 그래서 불임이 아닌 난임이라는 진단이 더 안심이 되는가보다.

Infertility.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이상의 임신 시도에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우리말 의학 용어로는 불임 또는 난임 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임이라고 했지만 난임이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불임(不姙).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불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필자 역시 의과대학 학생 때, 그리고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에 이 용어를 사용해서 배웠다. 그래서 필자도 난임이라는 용어 보다는 불임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

그러나 불임이라는 용어가 너무 부정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난임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고 현재 의료 일선에서는 두 가지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공문서 등에서는 난임이라는 용어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

난임(難姙). 임신이 어렵다는 뜻이다. 불임이라는 용어 보다는 덜 부정적이고 훨씬 희망적이다. 임신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니, 난임 부부에게 얼마나 희망적인 메시지인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비단 용어 순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의 의학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질병들이 의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치료가 가능한 범주에 들게 되었다. 산부인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임신이 현재의 의학 기술로 많이 극복이 되었고 가능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었다. 

최근 수십년간 체외수정시술은 더욱 정교해 졌고 세포 배양 및 조작 기술은 더욱 섬세해 졌으며, 부작용 적고 성능 좋은 약물 및 첨단 장비의 개발은 이러한 의학 기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필자가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던 시절만 해도 40세 이상의 여성이 불임클리닉을 방문하게 되면 담당 교수님은 입양을 먼저 권유했었다. 물론 40세 이상의 여성이 불임클리닉을 찾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모교실에 가 보아도 40대 예비엄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40대 여성의 출산이 드물지 않은 현상이 되었다.

과거에 비해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이에 따라 출산 연령도 함께 늦어진 탓도 있겠지만 40대 여성의 가임력이 과거에 비해서 더 좋아졌다고 볼 수는 없는 터라 의학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0대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임신을 위해 반드시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입양의 좋은 점과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빠와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2세를 꼭 출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부부가 자연적으로 임신이 잘 되지 않을 경우 그냥 포기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렵기는 해도 방법은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그 결과에 따라 선택을 해야 후회가 없을 것이지 않겠는가.

불임은 없다. 임신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방법이 있다. 길을 찾는 사람에게 그 길이 열릴 것이고 그 길은 준비되어 있다.

데스크  yeosunew@hanmail.net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