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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직업’에 대한 고찰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가 주는 교훈데스크칼럼> 김현석 편집국장

우리가 기적의 소녀로 알고 있는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되던 해 심한 병을 앓은 후 보고, 듣고, 말하는 기능을 모두 잃어버렸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장애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시 20살이었던 ‘앤 설리번’ 선생이 있었다.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수화 알파벳을 하나하나 반복해서 가르쳤으며, 자신의 후두에 손가락을 대게 해 떨림을 느끼게 함으로써 말을 들을 수 있게 했다.

헬렌 켈러는 이런 설리번의 현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수화를 익히고, 점자도 배우고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는 명문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했으며 설리번 선생이 손바닥에 적어 주는 강의 내용을 들으며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하루하루 눈물겨운 노력을 쏟으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후 헬렌 켈러는 여든여덟까지 살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쉽게 눈이 멀고 손발이 절단되는 사회현실과 싸우며 약자들의 편에 서서 치열하게 활동했다.

매사추세츠 주 피딩힐스에서 태어난 앤 설리번도 불후한 환경에서 자랐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는 설리번을 학대했다. 어머니는 결핵을 앓다가 설리번이 여덟 살 때 죽었다.

설리번은 친척에게 맡겨졌는데 그녀의 친척들은 건강한 설리번의 여동생만 돌보기로 하고 그녀와 결핵에 걸린 남동생은 매사추세츠 주립병원에 버렸다. 설리번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결핵에 걸린 남동생을 간호하는데 보냈고 결국 남동생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게 된다.

설리번은 시력을 거의 상실할 위기에도 처했다. 다섯 살 때 바이러스로 트라코마에 감염돼 점차 시력이 약해져 갔으며 인근 병원에서 사목하던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 바바라 신부의 도움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시력은 더욱 나빠져 겨우 사물만을 흐리게 분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1880년 설리번은 퍼킨스 시각장애인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학교 재학시절 받은 재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설리번은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고, 졸업 때에는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올라 연설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설리번의 이런 경험이 헬렌 컬러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1888년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는 퍼킨스 시각장애학교에 함께 등교하였고, 래드클리프 대학에 함께 진학해 공부에 매진하였다.

이러한 역사 속 위인들은 불우한 환경에서도 그 사회의 선진 교육 제도를 통해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교육’하면 ‘좋은 직업군’에 진입하는 수단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만일 혹자가 모임에서 “좋은 직업이란 것이 무엇이냐?

귀천이 사라진 지금 시대에 그것이 말이 되느냐”고 정색해 따진다면 이를 듣는 지인들은 겉으로는 가만히 있을지 몰라도 아마 속으로는 “저 사람 정말 뭘 모르는 개념 없는 친구로구먼.

좋은 직업을 굳이 물어 뭐하나. 그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돈도 잘 버는 그런 직업을 말하는 것이지 뭐야”라며 혀를 찰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교육이 어떤 발자취를 거쳐 왔는지는 우리가 경험으로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경우를 살펴보자.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기 한 해 전인 2004년에는 258명이 타지역 고교로 진학했으나 평준화가 시작된 2006년에는 285명, 2008년에는 250명, 2009년에는 341명이 타지로 전출했다.

성적 상위 10%이내 중학생 전출 현황을 보면 2007년에는 109명(24.9%), 2008년에는 145명(31.3%), 2009년에는 179명(41.4%)으로 점차 높아졌다.

인근 목포의 경우 2007년에 85명, 2008년에 76명, 2009년 66명이 빠져 나갔으며, 순천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60명, 114명, 95명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타지역 전출 현상은 입시제도와 깊이 연관돼 있다. 당시 감사원이 교과부와 EBS를 감사해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47개 대학 중 11개 대학이 수능과 내신 적을 단순 집계해 고득점자 1359명을 선발했다.

이는 지역 학교의 내신 성적을 무력화한 시도로 해석되는 것이다.

특히 3개 대학 462명의 경우는 내부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선발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면서도 이를 포함해 발표해 감사 지적을 받았다.

고교평준화가 실시된 2005년 이후 우수학생들의 농어촌 고교 진학은 전국적인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농어촌 특별 전형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부모들의 입시정보에 따른 선택이었다. 1996년에 도입된 농어촌 전형은 대학정원 2%안에서 농어촌 학생들만으로 배정해 선발한다는 대입 제도로 2008년에는 4%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전입해 온 성적 우수 학생들로 인해 오히려 농어촌 지역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피해를 입는 꼴이 됐다. 농어촌 전형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여주군이 여주시로의 승격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더불어 입학사정관제의 운영도 비현실적이며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대입제도가 각 지역 중학생의 타지역 고교 전출을 일정부분 좌우했다는 결론이다.

여수시와 여수교육지원청은 2007년부터 타지역 고교 진출을 억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내고장학교보내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시와 교육청이 추진한 이 사업은 2011년~2016년까지 순차적으로 286명, 225명, 207명, 218명, 235명, 148명이 전출했다.

2016학년도 상위 10% 중 타 고교로 전출한 학생은 총 60명으로 집계됐다. 시 자료만 놓고 보면 수치가 2011년 6.9%에서 2016년 4.62%로 감소되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타지역 전출 감소 현황이 시와 교육청이 추진한 내고장학교보내기 사업의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 연차를 두고 농어촌 전형 지원자격 요건이 강화된 데다, 또 타지 사립고와 특목고로 간 학생들의 입시 성적이 기대만큼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선 6기 여수시가 출범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명문사립고 유치 공약이 지역민들의 반발에 부닥쳐 '행복교육지원센터‘로 궤도를 수정했다.

애초 시는 수월성 교육의 일환으로 지역명문고 유치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역 명문고가 타지역으로 전출하려는 중학생들의 교육 수요를 해결할 수 있고 나아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추진과정에서 로드맵도 추진되지 못해 결국 좌초됐다. 선의가 왜곡됐으며,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으로 남았다.

시는 행복교육지원센터 사업을 각 사회단체 리더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추진할 계획이다.

시는 센터를 통해 인문학 교육을 비롯해 특화된 인성교육과 맞춤형 진로진학 지원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또 하나의 수월성 교육정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번 센터 운영은 그동안 여수시교육지원청에 교육비 지원만 해 왔던 시가 직접 시비를 갖고 교육정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성패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진정한 교육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저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이 만나 함께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떠올려 보자. 앤 설리번 선생의 직업이야말로 얼마나 보람있고 좋은 직업인가.

김현석 기자  arguskim@outl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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