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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여순항쟁, 국민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주철희 박사,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 지역 사회 온 힘 다해야

여순항쟁은 1948년 10월 19일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발한 봉기로 촉발하였다. 제14연대 병사들은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의 명의로 ‘애국 인민에게 호소함’이란 성명서에서 제주도 출동명령은 “제주도 애국 인민의 무차별 학살”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군인의 사명에 부합하지 않은 잘못된 명령이라고 밝혔다. 제14연대 군인으로 촉발한 봉기는 지역주민이 지지하고 합세하면서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여순항쟁은 전남동부지역을 비롯하여 전남・전북・경남 등 37개 시군에 파급되면서 1만5천 명~2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낳았다. 또한, 유족은 물론 지역민까지 연좌제로 인한 피해가 상당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여순항쟁 토벌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이분법적 사회를 양산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여순항쟁. 여순항쟁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9월 제주4․3평화재단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하여 ‘전국민 제주4․3사건 인식조사’를 실시하였다. 결과는 지난 11월 9일 제7회 제주4․3평화포럼 개막에 맞춰 공개하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16개 시·도 만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순항쟁을 비롯한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하였다.

여순사건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63.9%가 알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99%가 알고 있다는 답변에 비교해서는 낮은 인지도이지만, 10명 중 6명 이상 알고 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주4․3항쟁은 특별법이 제정되어 일정 부분 조사가 이루어졌고, 제주4․3평화재단이 설립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2차례에 걸쳐 사과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인지도는 68.1%로 여순항쟁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내년 제주4.3항쟁 70주년을 앞두고 제주도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 것도 이러한 연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6․25전쟁 당시 미군기 폭격으로 발생한 노근리학살사건 75.7%가 알고 있어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이번 조사는 제주4․3의 성격, 제주4․3의 피해규모, 제주4․3의 특별법 제정․공포, 제주4․3의 추념일 지정 사실, 제주4․3이 실현해야 할 가치 등의 조사도 이루어졌다. 특별히 주목되는 부분은 제주4․3에 대한 성격을 묻는 질문이다. 조사결과 ‘양민학살’이 38.5%로 가장 높았고, ‘사건’ 20.8%, ‘항쟁’ 19.5%, ‘폭동’ 8.2%, ‘모르겠다’ 13% 순이었다. 

   

진보 연구자 대부분이 ‘제주4․3항쟁’으로 명칭을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국민은 '양민학살'로 인식하는 경우가 38.5%로 가장 높았고, 항쟁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19.5%였다. 제주4․3항쟁 당시 정부가 주입하였던 '폭동'으로 인식은 8.2%에 불과하였으며, 성격을 규정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식은 20.8%로 높은 편에 속했다.

'항쟁'으로 인식이 ‘사건’보다 저조한 결과는 어쩌면 제주도 자체가 초래한 일면이 없지 않다. 연구자들이 항쟁으로 규정하였음도 제주도에서는 ‘제주4․3’이라고 칭한다. 즉, 뚜렷이 성격을 규정하지 못하고 ‘제주4․3’으로 제주도가 스스로 사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양민학살로 인식하는 경우가 38.5%로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규모와 피해 사실에만 치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제주4․3항쟁을 역사로서 인식하고 발발 배경, 원인 등을 규명하여 역사적 평가과정이 생략 또는 관심이 적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현재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제주4․3사건’은 어떠한가. ‘사건’이란 단어를 국가(정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그 이유인즉, 첫째는 국가 권력의 일탈에 대한 반성을 두려움이다. 둘째는 국민을 현혹하기 위한 측면이다. 셋째는 역사를 역사로 인식하지 못한 몰염치이다. 넷째는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기 일환에서 ‘사건’이란 용어를 붙였다.

이러한 경향은 일부 연구자에게서도 나타난다. 일부 연구자는 ‘사건’이란 용어를 중립적인 가치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를 역사로 보지 않고 이념대결의 구도에서 자신의 이념이 중도라는 것을 내세우는 측면이 없지 않다. 전문 연구자라고 하여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문 연구자가 사용한 용어가 일반인에게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에서 성격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민 63.9%가 여순항쟁을 인지하고 있다.

여순항쟁은 어떠한가. 공식적인 용어는 ‘여수․순천10․19사건’(일명 여순사건)이다. 문제는 정부와 연구자 이외에 우리지역의 시민단체마저도 ‘사건’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유족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여순사건’이라고 하겠지만, 일반화될 경향이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이는 제주4․3 인식도 조사가 우리에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은 내년(2018)에 70주년을 맞는다. 제주도는 ‘제주4․3 인지도 및 인식도’ 조사라도 해서 향후 방향을 설정하고 제주도민은 물론 국민과 공감대 형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조사라도 해볼 수 있을까. 언제쯤 시민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자리라도 마련될까.

주철현 여수시장은 ‘여순사건 69주년 여수 위령제’에서 “여순사건 특별법을 제정할 절호의 기회”라면서 유족을 위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사 정리를 거론한 것에 대해 기대감으로 보인다. ‘절호의 기회’란 손 놓고 먼 산 쳐다본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절호의 기회’도 처절한 노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얻어질 수 있는 결과물이다. 

여수시장은 ‘절호의 기회’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로지 서울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여수시장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말만 늘어놓는 말치레를 그만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 아니겠는가.

국민 63.9%가 여순항쟁을 인지하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지역사회에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철현 여수시장이 앞장서 줄 것을 촉구한다. 

데스크  yeosun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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