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매체에 소개된 독일의 76세 남성에 대한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20년 전에 차를 어디에 주차해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차를 찾아다니다가 절도 신고를 했었는데, 그 차를 얼마 전에 찾았다는 것이다. 철거할 건물 한켠에서 경찰이 차를 발견하고 연락을 해왔는데 그제서야 그 남성은 그곳에 주차를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20여년이 지난 후라도 몸부림치며 되찾게 되는 기억을.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 묻혔다 생각한 기억들은 또 얼마나 기억의 주체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일까?

   이균영의 소설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바로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과정들을 그리고 있는 중편소설이다. 이균영(1951~1996)은 광양 출생의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이다.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람난 도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이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1984년 제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신간회 연구>로 단재학술상을 받은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이기도 했는데 9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현재에서 가까운 지난 시간을 더듬어 가며 기억을 떠올리다가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더 먼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화자인 나는 30대의 무역회사 직원으로 회사 무역 계약과 관련한 은행 대출 서류를 잃어버리게 된다. 

토요일 저녁까지 업무를 같이 본 은행 신과장과 몇 차의 술자리 끝에 일요일 아침 눈을 뜨는데 그가 눈 뜬 곳은 자신과 아무 연고도 없었던 이문동의 여관이었다. 지난 밤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가운데 잃어버린 서류 봉투를 찾아 여관집 주인 여자와 방범대원, 같이 술 마신 신과장, 택시운전사 등을 만나면서 시간을 거슬러 가기 시작하고, 간밤 자신의 잠자리를 돌봐주었다는 전혀 기억에 없는 한 여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다행히 다음날 서류는 습득한 사람이 돌려주어 문제는 일단락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그 술집 여자와 택시기사에게 고집을 피워 이문동을 찾아간 이유를 다시 캐기 시작한다. 현재 전혀 연고가 없는 이문동에 자신이 왜 그토록 가려고 했는지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가다가 문득 자신이 어린 날을 보냈던 고아원을 떠올리게 된다. 고아원에서 그는 동생이라 믿는 혜수와 함께였다. 

전쟁으로 피난길에 어머니를 잃게 되는데 어머니가 죽음의 순간에 세살이었던 어린 자신에게 곁에 있는 여자 아이의 손을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그 여자아이가 혜수이다. 그러다 혜수가 입양되면서 ‘나’는 혜수의 손을 놓친 것이다. ‘이문동 박치과’. 혜수가 아마도 그곳에 있을 거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늘 새겨두었던 말이었다. 

세월이 지나 자신도 입양된 가정에서 평안한 삶을 살면서 차츰 잊고 있던 기억. 전쟁이라는 실존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하다가 어느 날 문득 잊고 살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기억의 수면으로 다시 떠 오른 것이다.

  “꼭 찾았어야지!”

  20년 전에 차를 잃어버린 남자에 대한 뉴스를 이야기하자 친구가 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았어야 하지!”라는 말은 굉장한 질책처럼 들렸다. 가끔 우리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과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되찾을 수 없고 기억해 낼 수 없어서 게다가 찾아야 한다는 무게감이 너무나 커서 종종 저 무의식이라는 심연으로 꼭꼭 숨겨버리며 없애버리려 한다. 

그 기억들은 문득문득 흔적 혹은 상처가 되어 끊임없이 기억의 주체를 사로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다시 꺼내어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지만 ‘지금, 여기’라는 현실의 부피감이 너무 커서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소중한 것들.

  지난 20일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발인이 엄수되면서 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천 315일 만에 희생자 304명 모두를 떠나보냈다. 꼭 찾았어야 하지만 놓쳐버린 것들을 우리는 아마도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묻고 살게 될까봐 겁난다. 

그래서 “세월호 선체의 영구보존”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들은 진실 규명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일 터이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는 것은 무책임함을 반복하는 일이자,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에 사로잡히는 ‘지금 여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일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찾아낸 후에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런 질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데스크  yeosun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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