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성(性)적 피해를 고발하고, 그와 관련한 아픈 상처를 고백하는 미투(Me Too)운동이 법조계를 필두로 문화계와 학계는 물론 종교계까지 번져가고 있다. 문재인대통령도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법적인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젠더폭력에 대한 자정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련의 움직임들을 보면, 현재는 삶의 한 부문에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이란 저서에서 인류의 삶 형태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과 달리 오랜 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몸에 저장된 유전적인 요소들은 이를 따르지 못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유발 하라리도 지난해 발표한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우리 삶에서 절대적인 ‘생존’과 ‘생사’의 문제는 인간이 어느 정도 해결할 능력을 지니게 되었음에도 우리 인류는 여전히 원시 수렵인들이 지녔던 생존에 대한 위기감을 우선에 두면서 여전히 경쟁과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거론했다. 아마도 성(性) 역시 이러한 불균형한 진화의 문제 중 하나로, 현재의 운동은 이 균형을 좀 잡아보려는 움직임이지 않을까 싶다.

인류에게 성(性)은 사멸하지 않고,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유지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더 나아가 생체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더 좋은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본능을 작동시키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하니 성은 개체 개개인의 욕망이 종족이나 집단으로 넓혀져 그들의 번성이나 우월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풍습으로 자리 잡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유럽의 영주는 농노들이 결혼을 할 경우 초야세를 부가하는데, 이는 결혼을 하는 신부의 첫날밤 처녀성을 영주가 빼앗는 제도이다. 또 인도의 한 부족 결혼 풍습에는 아주 아찔하게 높은 나무 끝에 결혼 첫날밤 보금자리를 만들어 신부를 머물게 한다. 이 신방에 들 수 있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부족의 힘 있는 남성 누군가가 된다. 이밖에도 지금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풍습으로 이누이트족들이 손님에게 부인과 동침을 권하는 것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풍습이 다 생존과 번성을 위한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더 뛰어난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한정된 부족들끼리 생활하면서 근친혼이 행해지면서 오는 유전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으로 외부인과의 사이에서 더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려는 방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삶의 방식을 바꿔가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때문에 초조해하는 유전자에 따른 욕망을 다스리기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투운동으로 힘과 권력, 폭력을 동반하며 암묵적으로 자행했던 잘못된 욕망들은 벌거벗음을 깨달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같은 부끄러움과 죄의식에 불안할 것이다.

문학에서도 성은 중요한 소재이다. 많은 작가들이 앞서 언급했듯 성을 존재의 증명과 생명의 차원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인근 장흥 출신 소설가 한승원은 영화화 되었던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폐촌>, <낙지 같은 여자>, <포구의 달>, <해신의 늪>과 같은 작품을 쓴 작가로 2016년 맨부커 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한승원의 작품은 남녀의 노골적인 관계 묘사와 성적인 표현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학교 문학에서 다루기 힘든 작품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한승원의 소설을 보면 자연의 생성 원리를 들어 성(性)에 따르는 폭력적인 부분과 힘의 개입을 피치 못할 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생명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겨울에 힘을 과시한 추위와 얼음장들에게 봄 햇살은 가학의 힘으로 작동하며, 녹는 강물과 터트려지는 꽃망울은 피학을 감수하며 발아되는 생명인 것처럼 말이다. 그는 우주만물의 생성 및 작동 원리를 가학과 피학으로 보는 작가인 것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읽기 불편한 부분이 많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윤간과 같은 성폭력은 이념 갈등과 인간성이 피폐해진 절박한 삶과 맞물려 일종의 복수이자 화풀이처럼 행해지고 있다. 문학적 해석과 연구 과정에서는 이러한 폭력을 감싸 안고 생명으로 이끌어 가는 여성들의 모신(母神)적 요소들에 의의를 부여하며 의의를 찾아낸다.

이런 문학적 의의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지만 작품 속에서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적인 성의 모습은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랑에 미숙한 남성이자 작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볼 수 있다. 비단 한 작가 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지나온, 현재도 그럴 수 있는 근대 남성들의 사랑에 대한 미숙함 혹은 왜곡된 사고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잘못 굳어진 유전자만을 따르는 욕망의 발현에 대해 본능이라고 묵인해 달라고 떼를 쓰려는 남성 일부들의 모습 말이다.

미투 운동이 남성들의 이런 떼씀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운동은 용기와 실천, 함께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8. 2. 27.)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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