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난 예술적 해조음(海潮音)을 마음속의 솥단지에 닳아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혹시 해조음을 닮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의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정녕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준 들숨 날숨을 반복할 때마다 창작적 예술성을 해조음처럼 허공과 대지를 울려야 했거늘…… (강기영, 「참, 시끄럽다」, 『여수문학』 제39집, 한국문인협회여수지부, 2017, 171쪽.)

오늘은 한국문인협외 여수지부 소속 수필가 고(故)강기영 선생의 49재이다. 지난 2월 문향(聞香)의 자세로 스스로를 글 향 (文香)으로 가득 채운 수필가 강기영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고독이 원래 우리의 진면목이 아닌가” 했던 강기영 선생은 생전 글을 통해 “영혼이 육신을 떠난 이후에도 영혼은 혼자서 고독한 여행을 한없이 계속할 것이다.”고 썼다. 발표한 수필들 속에서 선생은 이 고독과 마주하는 날 무서워하지 않고 고독을 친구처럼 기쁘게 만나기 위해 많은 날들을 고독에게 곁을 내주고 있음을 드러냈다.

진실은 언어나 문자를 떠나 있으니까.

고독은 국외자가 아니다. 고독은 천(天), 지(地), 인(人)을 자각하는 큰 문이다. 하늘 땅 사람을 진실로 알기 위해서는 큰 침묵으로 들어와야 하고 큰 침묵은 큰 고독을 통해서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기영, 「고독의 눈」, 『여수수필』 제 22집, 여수수필문학회, 2006, 96쪽)

가는 길 역시 침묵과 고독으로 일관했던 선생은 이제 자각의 큰 문도 지나고, 고요한 옹달샘 수면에 어린 달빛과 당신의 모습을 편안히 바라보고 계실까?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2년 문학 예술지에 수필 당선 등을 기점으로 여수문인협회와 여수 수필문학회에 적을 두고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고(故)강기영 선생은 저서 『해방된 상자 속의 자유』를 남겼다.

그의 수필은 ‘기영이의 바라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작품 속에 당신의 이름을 주어로 선택하거나, 스스로의 이름을 자주 부르는 형식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의 글은 그 기영의 철저한 바라봄에서 시작된다. 기영이의 행동이나 기영이가 움직였던 구체적 시·공간 속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아니라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영이가 바라보는 것들을, 또 그런 대상을 바라보는 기영이를 표현한 것들이다.

본다는 말이 있다. 보게 하는 절대 대상이 있어서 내가 사물을 본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사물의 실체를 본다는 의미도 아니다.

내가 밖의 사물을 보게 되면 이와 동시에 그 사물은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앉는다. 그러니까 밖의 사물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만다. 이때 내 마음 속에 앉힌 그 사물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그 사물의 그림자인 것이다. 내가 본다는 것은 내 마음 속의 그림자를 내 마음이 다시 본다는 것이다. (강기영, 「숲 속의 이야기」, 『여수수필』, 제19집, 여수수필문학회, 2003, 119쪽)

자고 일어나면 본다. (중략) 습관적으로 본다.

이런 일은 내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봄으로써 자신이 살았음을 스스로 느꼈고 삶이 나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이끌어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중략) 진정, 보는 마음이 주인인가, 아니면 보여지는 대상이 주체인가.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이 용(用)인가. 체(體)인가. (중략) 그 자리엔 욕망의 숲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자괴했다. 자신의 능력 밖에 있었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보면서 마음의 흐름을 관찰하고 평가를 내린다는 게 하나의 꿈이었고 수행 없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기영, 「한낮은 수면 중」, 『여수수필』, 제 21집, 여수수필문학회, 2005, 122~124쪽)

그가 바라보는 것들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것들이기에, 그는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고, 그 흐르는 것들을 포착할 수 있는 찰나를 붙잡아보려 다시 또 본다. 그리고 대상을 따라 그도 변화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불교적 세계관을 읽어볼 수 있는 그의 수필은 정체되지 않고 변해보려는 ‘기영이의 바람’들이 작품화되었다.

흐른다. 물이 흐른다. 바닷물이 돌산대교 밑을 흘러 흘러간다. 시간이 기영이를 흐르게 하는지 아니면 본인의 존재 자체가 시간을 만들면서 함께 흐르는지 아무튼 흐른다(변한다는)는 사실은 엄염한 현실이었다.

있다는 것 자체는 변하는 것이다. 불변이라고 여김은 허상이다. (강기영, 「거연정」, 『여수문학』, 제 28집, 한국문인협회여수지부, 2006, 153쪽)

떠나는 이 길은 선생이 다시 직면한 변화이고, 또 다시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하는 고독한 성찰이 계속되고 있는 길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그러한 고통스런 숙명을 마쳤다 해도 그의 수필을 읽는 우리에게 그는 여전히 ‘바라봄’과 ‘변화의 바람’을 위해 고독하게 침묵하는 기영이로 남을 것이다.

언제나 흐르고자 했던 고(故) 강기영 선생.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선생은 평소 타보고 싶어 했던 고속 열차를 타고 가실까? 그 여행길에서는 “기영씨”라고 부르며 전화해 온 여인과 통화하면서, 이제야 고독한 팔자소관이 바뀌는구나 싶어 하실까? (2018. 3. 28.)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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