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세월호 이후 우리는 ‘부끄러움’의 윤리와 ‘기억의 윤리’를 중얼거리며 산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곧 감당이 안 되는 어떤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고, 그 속에서 스스로가 수동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이것을 되풀이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슬픔이 될 것이며, 굳이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왜인가?

슬픔과 부끄러움을 겪었던 무력한 이들은 스스로를 말할 수 없으며, 그들에게는 침묵만이 유일해 보인다. 그러나 그 말할 수 없는 이가 말을 해야만 그것이 진짜 ‘증언’이 된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이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방언’이나 ‘수다’처럼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설령 그 언어와 생명체인 자신과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말하기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 말하기를 위해 ‘기억’도 역시 지속되어야 한다.

김연수의 소설 <저녁이면 마냥 걸었다>는 매우 짧은 단편소설이다.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여인이 서술자이고, 그녀는 그 유가족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해오던 사진작가 ‘이진혁’의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이라는 사진전에 들른다. 그곳에서 ‘이진혁’이 경주 관광 잡지에서 본 ‘팔복서점’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녀도 이곳을 찾는다.

팔복서점의 주인은 ‘서지희’로 그녀도 아이가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죽자 10여년을 알콜 중독 상태로 지냈으며 현재는 그 사고 현장인 천마총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서점을 열고 일주일에 한번 ‘책길’이란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 서점 한 켠 벽에는 윤동주의 육필원고 ‘팔복’이 실크스크린으로 인쇄되어 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여덟 번 반복되는 시, 그리고 마지막 추가된 한 행이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시이다.

“다시 한 번 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그 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아이와 함께 사는 것, 다시 사는 것은 한 번도 중단된 일이 없었으며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날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만약 수학여행을 안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선뜻 그래, 이번에는 나도 안 갔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더라면?’ 이런 ‘가정(假定)의 지옥’에서 언제나 반복되기도 할 것이다.

아이가 죽은 현장에서 늘 무덤을 바라보며 슬픔을 안은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는 일. 이것은 슬픔을 잊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원한 슬픔과 함께 사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무력했다는 부끄러움을 안고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야하는 사람들. 가장 큰 것을 잃고 피해를 입었지만, 가장 죄인처럼 죄의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슬픔을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슬픔을 품은 삶 역시 그런대로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내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여순사건 70주년인 올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슬픔도 사실은 그 부끄러움에서 연유할 것이다. 부당한 국가 폭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침묵하고 무력했다는 부끄러움이거나,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많았던 이들 대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 그리고 인간이란 종이 또 다시 이런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 그들과 연결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유가족들은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픔의 사건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증언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인다.

부끄러움은 어떤 하나의 잘못에 대해서가 아니라 존재 전체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 감정이다. 부끄러움이란 자신이란 존재의 모든 것이 다 부끄러워지는 것이며, 신체적인 변화까지도 동반하는 신체 감정이다. 부끄러움은 해소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통증 속에 고통 받게 되는 감정이다.

역사 속 부끄러움의 사건들은 제대로 증언되고 명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전환이 가능해진다. 부끄러움은 변화를 추동하는 내적 힘이 되는 만큼 우리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부끄러워하고서,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야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스스로를 용서하고, 그 이후 필요하다면 또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 가능해 질 것이다. (201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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