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혼란스럽다 못해 불안하기까지 하다. 밖으로는 국가적 체면과 신용이 흔들리고 안으로는 도처에서 난조(亂調)와 파탄의 불길한 징조가 나오고 있다. 앞뒤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적이고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온통 갈등과 혼란과 불만의 파열음만 터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1998년 2월 25일 27분에 걸친 취임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여러분과 같이 상의하겠습니다. … 금년 1년만이라도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야당을 향한 말) “작지만 강한 정부, 이것이 국민의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의 국정은 이 다짐들은 간 곳이 없다. 정치는 구태 그대로요, 여야 관계는 막다른 골목에 다달아 있다. ‘작지만 강한정부’도작지만은 이미 물 건너갔고 남은 것은 ‘강한 정부’의 재다짐 뿐이다. 여당의 안쪽에서도 여러 갈래의 고언과 자성의 말이 나오고 있다. 정치의 단절과 폐색이 국민을 답답하게 하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의약분업과 의보재정문제, 대우·현대문제, 교육개혁의 파행과 교육이민문제, 경제만 해도 안팎에서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점차 먹구름이 짙어지고 정치권은 본연의 국정 차원을 넘어 벌써부터 대권다툼에 정신이 팔려 민심이나 국가경영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2000년 8월 초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은 “국민정부 사전에 레임덕(권력누수)이란 없다”라고 말했다. 5공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직후에 레임덕이 됐다. 6공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직전에 레임덕이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1년 전쯤 레인덕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2년을 남긴 지금 레임덕이 일고 있지 않나 싶다.
집권자나 여당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요즘 국정 표류현상이 심각하다. 의보체계의 파탄, 교육위기와 교육이민, 경제구조 조정과 실업대란사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등 우리 사회의 골간을 이루는 분야들이 한꺼번에 개혁의 대상에 올라 있으나, 관련 정책들이 실패를 거듭,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미일 경제가 경착륙 가능성이 있고 국내적으로는 현대그룹 등 위험요인들이 산적한 상태에서 이같은 국정표류현상이 반복되고 있어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국정 난맥상의 근본적 원인은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인데다가 내각제를 담보로 한 소수연립정부인 점, 그리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불일치로 인한 정치적 통제력의 약화, 경제현상의 불투명한 점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레임덕은 임기제 대통령에게 국정의 전권을 맡기는 민주주의의 피치 못할 비용일 수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 비용이 엄청날 수가 있었음을 우리는 김영삼 정부말기에 경험했다. 예로 전두환 대통령은 4·13 호헌선언이라는 초강수로 6월항쟁을 불렀고, 노태우 대통령은 탈당과 중립내각이라는 변칙수를 두었다가 자당(自黨) 후보에게 정권을 탈취당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1년전 신년회견에서 통치권 강화를 호언장담한 직후에 그 위세가 급전직하했다. 한보사건, 김현철 사건, 노동법 날치기 등의 오랜 적폐(積弊)를 아랑곳 않는 오기가 오히려 레임덕을 불러들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초 회견에서 강한정부, 강한 여당론을 들었다. 강한정부는 강한 여당이든 레임덕의 비용을 관리하는 슬기다. 레임덕은 피치 못할 비용일 뿐 아니라 효용 또한 크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를 뛰어 넘을 수가 있다. ‘큰 정치’로 정치지도자가 아닌 국가지도자가 된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아니겠는가.
레임덕을 사전 인지하여 국정의 실적이 나쁜 것보다 나쁜 것을 나쁘지 않다고 우기는 억지논리, 그 교언(巧言)이 더 나쁘다.
나쁜데도 나쁘지 않다고, 사실인데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면 신용은 더욱 떨어지는 것은 물론 미움까지 받게 된다.
생각해 보면 지난 3년간 정부가 신뢰를 많이 잃었던 것은 숨길 수 없다. 남은 2년간 잃었던 신용을 곱으로 재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 신뢰가 있어야 대북정책도 내부 분열도 일사분란하게 추진할 수 있고, 김대중 대통령의 숙원인 4대개혁의 궤도진입이나 그토록 소망하는 정권재창출 등도 국민 신뢰의 바탕이 있어야 기대할 수 있다. 남은 2년 뼈를 깎는 아픔을 이겨야 한다.
취재팀 webmaster@yeosunews.net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