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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뱃길' 교과서 수록하자!

윤문칠 편집인 전) 전라남도 민선 교육의원

인터넷에서 모정의 뱃길을 검색해보면 60년대 심금을 울렸던 실화 영화 그때 ‘모정의 뱃길(19분30초 영상)’과 유명한 가수 이미자의 ‘꽃 피는 여수 바다’ ‘사랑의 뱃길 삼만 리’ 등 노래가 제일 먼저 뜬다. 자식 교육을 위해 강풍이 불어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어머니의 노질은 멈추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열의를 잃지 않았던 두 모녀를 통해 훈훈한 미담을 일으켰던 옛 추억이 기억 속에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지역의 보물을 어렵사이 발굴해서 그 당시의 귀감을 후생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 미덕을 계승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지자체에서 체계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 어머니, 현모양처의 귀감이자 여류 문학자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위해 세 번 이사한 맹모삼천지교는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안개가 자욱이 서린 새벽이 걷어지면 섬 아이들을 실은 나룻배는 학교가 있는 육지를 향해 아침햇살을 헤치고 이곳저곳에 바쁜 노를 젓기 시작한 모정의 뱃길 교육열이 더 위대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수 남초등학교 졸업식(1962년 2월) 장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박승이 여사(당시 35세)가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받을 때, 딸 정숙현 학생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학부모와 내빈들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열악한 섬 생활에도 6년을 하루같이 노를 저으며 육지의 학교를 보낸 어머니의 사랑은 딸만을 위한 뱃사공이 되어 뱃길을 무려 3만 3천 리를 저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어 청와대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됏다. 이런 전국적인 유명세로 나룻배를 이용해 딸을 통학시키는 ‘모정의 뱃길 장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 지역 교육열을 떠올리면 한 고등학교에서 매년 서울대 20여명을 합격시켜 전국에 맹렬하게 이름을 떨치며 기세가 드높고 강렬했던 최고 수준의 시절이 있었다. 그 비상의 힘찬 날갯짓을 그 뒤에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민들, 저녁 도시락을 들고 교문 앞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들의 조건 없는 값진 사랑과 희생은 우수한 지역 인재 육성에 늘 함께했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한다. 지금 우리 지역의 교육을 보면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된 고교 평준화가 그렇고, 시민들을 무시한 지독한 사기극에 말려들어 전남 제일의 도시에서 지역 브랜드 대학교가 없는 도시로 변화면서 28만이 무너지는 인구 감소의 현실이 되었다.

모정의 뱃길’의 훈훈한 미담을 큰 반응을 일으켰던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은 국동 항을 마도로스거리로 정부에서 지정하여야 한다.  그래서 마도로스 거리에 해양도서관 및 조형물 등의 볼거리로 세계적 명품 해양 관광 휴양 도시가 되도록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정의 뱃길 주인공이 살았던 가장도를 탐방할 수 있는 교육의 꽃 섬으로 조성하고, 지자체에서 장한 어머니 상을 추진하여 다시한번 강렬했던 어머니의 교육열을 전국에 상품화하여야 한다. 한때 교육청에서 ‘모정의 뱃길 장한 어머니상’을 매년 수상하여 귀감이 되었다.

그 뜨겁던 '모정의 뱃길' 교육열이 교과서에 수록되고 전국에서 제일 긴 국가어항에 정박되어있는 많은 어선들의 풍광을 최고 상품화하여 세계적인 명품 해양관광 휴양도시가 되도록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할 것이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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