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 세종대왕 탄일을 ‘세계문명퇴치의 날’로 지정했다. 제4물결을 앞지르려는 미래학자들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국제화 추세로 2·30년 후에는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강대국 언어만 남고 나머지는 이들 언어권에 ‘편입’되거나 소멸될지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영어문화에 못지 않는 한자문화권에서도 한글을 창제하고 발전시켜 왔으며 일제의 혹독한 한글말살정책에 맞서 우리글과 우리말을 지켜낸 민족이다.
지난해 11월 30일 45명의 국회의원 발의로 국회에서는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공청회(제안자 辛基南 의원)’가 열렸다. 여야 의원을 비롯해 많은 인사가 참집했고 장내 분위기는 마치 한글날 국경일 지정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공청회 축사를 맡은 국회 문화관광위원장과 행정자치위원장은 공청회가 열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문제는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겉치례로 넘어갈 일인가. 며칠 뒤에 개회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는 이 안이 ‘보류’되고 말았다. 한심한 국회의원 제공들, 정치인의 겉치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가와 민족과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것을 간곡히 권한다.
국경일은 우리가 가장 경사스러운 날을 가려 제정했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로 정하고 신정, 설날, 어린이날, 석탄일, 성탄일, 현충일, 추석 등을 법정공휴일로 삼고 있다.
그런데 ‘3·1절’과 ‘제헌절’ 및 ‘광복절’ 명칭과 국경일을 똑바로 개정함이 옳다. 우선 3·1절의 호칭 문제다. 3·1절 호칭은 1949년 10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 일제 항쟁의 의의를 중화시키려는 친일세력의 간교가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닌지 모른다. 제대로 이름을 붙인다면 ‘항일절’이나 ‘독립절’로 함이 옳다고 본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가 헌법을 제정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 나라 헌법 전문에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선포한 1919년 4월 11일이 제헌절이 되어야 옳지 않은가.
국군의 날도 바꿔야 한다. 현재의 10월 1일은 6·25전쟁 중 국군 보병 3사단 23연대 3대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가 원인이야 무엇이든 동족상쟁과 관련되는 날을 국군의 날로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 할 것이다.(본문은 1994년 9월 28일 D일보에 필자가 제언한 바 있음)
한국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당시 중국의 수도인 중경(重慶)에서 창군식을 가졌으니 국군의 날도 가려야 한다. 광복군의 명칭도 처음에는 ‘한국독립군(Korean Independence Army)’으로 표기했으나 1942년부터는 ‘한국국군(Korean National Army)으로 고쳐 주권국가의 정식 군대임을 선언하고 조국광복작전을 전개했다. 한국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개정하는 것이 군맥을 잇고 정통성을 살리는 길이다.
끝으로 개천절을 양력 10월 3일로 지내는 것은 음력 10월 3일로 바뀌는 것이 정론이라 할 것이다. 1990년 11월 노태우 정권이 내세운 논리가 ‘노는 날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생산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되었다.
우리의 민족 역사를 이렇게도 이해하지 못하고서야 무슨 문화정책을 올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무분별한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국경일을 제자리에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취재팀 webmaster@yeosunews.net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