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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의 외출”
작가 윤문칠 (전남명예 예술인)

따뜻한 봄바람에 도로가의 벚꽃이 화려하게 흩날리며 자연의 모든 신록이 기지개를 켜는 듯, 사방을 보아도 봄꽃들이 만발하여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봄의 기운이 만연한 세상은 이제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듯하다. 교육계를 떠난 지 오래되어 이제는 일과는 거리가 먼 백수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생활과 단절된 것은 아니다. 비록 봄날은 지나가고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젊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한때 함께 근무했던 화양고 김재철 교장선생님이 본교에서 퇴임했던 이남휴 교장선생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는 전화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김 교장에게 최근 진학현황을 듣고 같이 근무했던 오랜 교직 생활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따뜻한 봄날을 회상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토요일 오후,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내와 초등학생 손녀와 함께 화양면 해변 도로를 달리다가 풍경이 예쁜 곳에서 사진도 찍고, 20년 전 내가 처음 교장으로 승진 발령(2004,3,1)을 받았던 화양고 교정으로 향했다.

싱그러운 봄바람과 해풍을 만끽하며 학교 교문 앞에 다다르자 정원에 교훈이 새겨진 정원석 옆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재임 시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정원에서 교정을 배경으로 손녀와 기념사진을 남기는데 손녀는 정원석 뒤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고 놀라며 할아버지의 이름이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해 했다.

정원석 뒤에 새겨진 교감(최영우)샘의 이름을 비롯한 지난날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과 안양관 건축에 도움을 주었던 분들과 함께 깊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체육관 입구에 새겨진 '眞理', '知德', '忠孝'의 글자와 안양관의 정원석 한곳에 남겨진 내 이름을 보며 아내가 돌(수석)을 사랑하더니 하며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가 교장 시절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에요?"

손녀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나는 20년 전의 열정적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본관 전광판에는 00대학교 0명 등의 진학 내용이 흘러 지나간다. 안양산의 뒷자락에서 오랜 세월 쌓인 양택과 음택의 풍수 기운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교정의 네그루 노거수에서 핀 벚꽃의 만개는 그때의 추억인 듯했다.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체육관 건립을 이뤄냈고, 중소회장님에게 편지를 보내어 기숙사 건립을 약속받았을 때의 감사와 환호가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처럼 더욱 정신을 차리고 삶의 핸들을 꽉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교직에 있을 때는 그 때의 시절의 가치를 몰랐지만, 이제는 꽃이 지고 새가 떠나는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며, 그 시절을 함께했던 이들과의 따뜻한 추억을 가슴에 품고 생활하고 있다. 가끔 대중가요 '내 생애 봄날은 간다.'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 노래처럼 지나간 시절의 생명력이 내 기억 속에서도 오래도록 살아 숨 쉰다.

한때 학생들이 유명 가수 배기성과 닮았다며 인터넷 포털에 2007년도에 올린 내 사진이 학교 간 경쟁 속에서 명예의 전당 1위를 차지했던 일이 있었다.

이제는 웃으며 회상하는 추억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때 제자들이 나의 '봄날'을 조금 더 화려하게 만들어 주었다.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니, 교장 시절에 겪었던 일들이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의 봄날은 거침없이 지나갔고,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이제는 익어가는 세월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붙잡고 싶지만, 결국 모든 것은 흘러가고 말 것이다. 정원석에 새겨진 이름처럼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것들도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게 된다.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익어가는 세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오늘, 학교에서 손녀와 손을 잡고 돌아보는 하루는 정말로 좋았다.

"이 모든 추억이 언젠가 너에게도 소중한 이야기가 될 거야."

손녀의 눈빛 속에는 이해의 빛이 서렸다. 20년 만에 찾아온 교정에서 흘린 웃음과 나눈 대화는 또 다른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날의 기억이 언젠가 손녀의 마음속에서도 따뜻한 추억으로 피어날 것을 기대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내 생애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렸다.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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