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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고 세라 교복그때 그 생각을~(수필 - 2)
윤문칠

교육계를 떠난 지 오래되어 이제 일과는 거리가 먼 백수의 삶을 살고 있다.

그때는 항상 햇빛처럼 얼굴이 빛나도록 좋은 생각으로 생활해 왔지만, 지금은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마음만은 여전히 젊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이 어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교육현장이 너무 많이 변했다.

군사독재시절(80년)에 고교교련과목 부활과 전국 중고등학교 교복착용이 폐지되고 두발이 자율화 되면서 사복에 다양한 머리모양을 하고 등교한 학생들을 바라보면 학생인지 사회인인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문제점이 많았다.

필자는 여수고(80년) 여천고(85년)를 걸쳐 여수여고(90년)로 발령을 받아 학생주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는 각 학교학생부장 선생님들이 야간에 모여 극장, 당구장, 등 생활지도를 하였으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시절 남단의 조그만 항구도시에 높은 교육 수준으로 전국을 평정해 나가던 해 여수고에서 서울대 25명을 합격시킨 신화를 한창 써 내려가던 해가 있었다.

하지만 단지 교사와 학생들만으로 해낸 것이었을까?

교사들이 묵묵히 자율학습과 깜지로 비상의 힘찬 날갯짓 뒤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시민들, 값싼 신발과 삭발로 야간자율학습에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저녁 도시락을 들고 교문 앞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값진 희생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 비싼 메이커 있는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다녔던 학생들을 바라보면 해군 병사들이 입은 군복을 디자인하여 만든 세일러복인 예쁜 세라교복 생각이 났다.

교장실로 찾아가 교복을 착용하기를 건의했다. “교복을 입히자고요?”

교장 선생님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반문을 해 왔다. “ 윤 부장님, 교복을 다시 입자는 것은 또 무슨 발상입니까?” “교복이 일제의 잔재물이라고 하는 말에 제가 교복을 입히자는 것은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심어 주고, 교복을 통해 여자고의 자존심과 일체감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애교심과 일체감이 교복을 입는다고 생성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네. 그렇지만 현재 학생들이 입을 수 있는 옷도 한계가 있고 그 비용도 상당히 많습니다. 영국도 명문고는 교복을 착용합니다.

우리학교도 명문학교인데 긍지와 자부심을 불어넣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교복을 입히자는 내 의견은 급물살을 타고 학교장 재량으로 다시 교복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동문들과 협의를 통해 교복 선정에 협조를 요청하였으며, 학생복 전시회를 통하여 교복을 직접 디자인하여 공개하였다.

세라교복을 모델로 디자인과 색상 등 학생들이 선호하면서 전통이 느껴지는 교복을 찾아냈다. 그때 1학생 김승연, 2학년 황윤미 두 학생을 교복 모델로 선정하여 사진을 게시판에 알렸다.

전남에 최초 여수여고 학생들은 92년 3월부터 전교생이 단정한 머리에 교복을 착용하고 햐얀 양발에 단화를 싣고 등교하였다. 시민들과 인근 학생들도 교복을 착용하고 등교하는 모습에 다들 부러워하고 좋아했다.

그 후 학교마다 특성에 맞춰 여수고 교복착용을 시작으로 모든 학교에서 교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요즘 학생들을 바라볼 때마다 30여년이 지났지만 그때 왜! 교복착용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건강하신 홍두석 교장선생님을 만나 그때 여자고 교복 생각나십니까?

자네 그때 어찌 그런 생각을 했어! 교장선생님, 역사가 있는 다목적강당(음악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 신축하기 위해 큰 벗 나무를 베어버린 것을 가슴아파하던 그 추억이 생각나십니까?

여자고 세라교복은 정말 멋있었어! 허, 허, 하며 입가의 미소가 그려진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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