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명예 예술인(문학) 작가 윤 문 칠

동백 꽃 하면 우리 엄마 생각이 난다.

나들이를 나가시기 전, 경대 앞에 앉아 긴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빗어 틀어 올려 비녀를 꽂으시니 머릿결엔 동백기름이 발라져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밖으로 나가실 때면 고운 한복에 단정한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빛마저 머릿결 위에선 미끄러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의 단정한 머리가 좋아서 나는 손바닥으로 쓸어 보길 좋아했고, 그러다가 엄마한테 철썩하고 엉덩이에 불이 날 만큼 얻어맞기도 했지만, 동백기름을 바른 모습은 내 추억에 남아 있는 가장 어린 날의 기억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우리 가족들은 오동도를 찾았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엄마의 옷고름 가슴에 동백꽃을 달아주고 동생이 땅에 깔아놓은 듯 꽃을 한 줌 가득 손에 주어 엄마에게 뿌리면서, ‘우리 엄마 예쁘다~’며 소리를 치고 뛰어가니 어색하게 미소 띤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제법 쌀쌀한 10월 중순 이맘때가 되면 억울하게 희생된 여･순 시민들 영령의 마음에도 동백은 피어 내린다. 앵두보다 더 진한 빨간 꽃은 한파 추위도 이겨내고 나무에서 한번 피고, 땅에서 한번 피고, 마지막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한 번 핀다.

그래서 붉은 꽃의 노란 수술이 평화의 빛으로 가득한 동백꽃이 여수의 상징이다.

민둥산인 구봉산 아래 어촌마을에서 넘너리 고갯길을 넘으면 가막만을 끼고 있는 발원지(㈜한화)는 일찍이 신근ㆍ봉양ㆍ물구미 불리던 듣기만 해도 그리운 우리 동네가 여순사건 현장이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파병을 반대하면서 무장 반란을 일으켜 평화롭던 마을에 여･순사건(1948, 10, 19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무자년 동짓달 초하루(48, 11, 1) 그 난리 통에 태어났다.

진압군이 여수에 투입되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달에 놀라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일주일 늦은 심한 진통으로 양수가 터져 겨우 나았다고 한다.

아들을 낳았다고 대문도 없는 돌담 앞에 대나무에 새끼줄 까서 고추를 걸어놓았으나 마을 사람들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아빠, 엄마 성을 따라 양7일 간의 사건 속에 태어났다 하여 일곱 칠자를 붙여 이름을 외조부께서 지어주셨다. 오래전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때 조선일보 기사 (48.11.2)에 의하면 반군 협조자 색출작업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부모·형제 사망 숫자가 2,522명이고, 여수 시가지를 모두 불 질러 온통 불바다였다고 한다. 오랜 상처와 분단의 세월 동안 자행된 사건은 시민들을 ‘용공주의자’ 또는 ‘빨갱이’로 몰았다. 그 날의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앞서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는 소리를 인사처럼 하셨고 그 잔소리 속에 자라 지금의 세월이 되었다.

여･순사건 시기에 태어난 내가 장년이 되어 민선 교육의원이 되었다. 그때 희생된 민간인 피해 보상과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청원 결의안을 전남도의회에

처음 발의(‘11, 6, 14)하여 12년의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에 통과(‘23, 7, 27)했다.

여･순사건과 더불어 그렇게 시작된 내 삶이 부싯돌이 부딪힐 때 반짝하는 빛처럼 빨랐던 세월도 올해로 76주년을 맞이했다. 그때 고통 속에 자식을 낳아서 따뜻하게 키웠던 동백꽃 같은 울 엄마 감사합니다.

그때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혼을 애도하며 그리움이 짙은 침묵의 호수 같은 가막섬을 바라보며 날마다 희망의 소원을 기원하던 울 엄마! 경대 앞에서 동백기름 단정히 바르고 동백꽃 브로치를 하던 우리 엄마! 이맘때가 되면 너무 보고 싶다.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동백꽃 당신!

“동백꽃 당신!

무자년 동짓달 초하루

그 난리 통에 살아난 붉은 동백꽃!

나무에서 한번 피고

양탄자 펼쳐놓은 땅에서도 피고

우리들 가슴 속에도 핀다.

그날의 희생된 넋을 위로하며

영령의 혼을 상징하는 동백꽃

침묵의 고통 속에

울 엄마 가슴 속까지 내리 핀다.

아! 여수의 꽃이여

꼭두새벽! 눈이 뜰 때에

장독대 위에 정안수 떠놓고

빌고 계시던 울 엄마 모습이 생생하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던 울 엄마,

야속한 세월 속에

먼발치에 자식들이 돌아오나?

대문 앞 미소로 보둠아 주시던 울 엄마!

어느새 백발로 황혼에 접어드니

울 엄마 생각이 더 난다. 동백꽃 당신!

데스크  yeos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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