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곡학아세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 말은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에 나오는 말로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시류나 권력에 아부해 출세를 꾀한다는 고사성어다.

한(漢)의 경제(景帝) 때 원고(轅固)는 시경에 밝아 일찍이 박사가 되었는데, 성품이 강직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았다.

경제의 모후 두태후(竇太后)는 노자를 따랐고 어느날 원고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서 물었다.

좥태후마마, 그런 것은 아랫것들이나 종들이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좦

원고는 한 마디로 무시해버렸다. 그는 유가의 가치도덕(價値道德)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사상을 경멸하고 있었다.

대노한 두태후는 원고를 돼지 우리로 들여보내 돼지를 잡도록 했다.

그러자 원고의 강직한 성품을 알고 있던 경제는 몰래 잘 드는 칼을 들여보내 그를 도왔다.

경제의 뒤를 이은 무제(武帝)는 병으로 낙향한 그를 다시 현량(賢良)으로 발탁했다. 그러자 그의 입바른 소리를 두려워한 무리들이 그의 나이 이미 아흔이 넘었음을 문제삼아 무제가 다시 그를 낙향토록 했다.

좥배운 것을 올바로 말하기를 힘쓰고 배운 것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좦

원고는 낙향시에 그와 함께 발탁되었던 공손홍(公孫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첨을 일삼던 공손홍 역시 그의 바른말이 두려워 그를 꺼리던 인물이었다.

얼마전에 소설가 이문열씨가 모 일간지에 ‘신문없는 정부를 원하나’라는 기고문에서 국세청이 언론사의 탈세혐의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을 3개 방송사가 모두 생중계하고 종일 그 뉴스로 화면을 뒤덮은 것은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나치의 대국민 선전선동을 연상케 한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또 그는 언론과 정부라는 두 기관차가 출동로 승패를 가름해야 한다면 나는 언론쪽의 승리를 지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음날 여당 추미애 의원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서 “이 소설가야말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비난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면서, 지성인들이 일부 신문의 지면을 통해 성장한 뒤에 그 언론에 곡학아세해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리고는 이튿날 다시 이씨 개인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언론을 통해 성장한 지식인들이 자신의 지식을 팔아 권력에 아부하는 것을 비판하려 했던 것이라며, 이씨가 브레이크를 밟아라면서 언론과 정부의 충돌을 피하라고 주문한 것은 애매한 말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이 있다. 태산이 크게 울며 움직여 알아보니 쥐 한 마리 뿐이라는 말로, 두 사람이 워낙 저명 인사들인지라 가위 태산명동에다 비유할 수가 있겠고 내가 놀라서 뛰어나온 그 쥐가 되어 같잖은 소리를 옮겨본다.

언론의 자유가 너무 많아서인지 표현들이 조금 지나치다. 지식이란 다듬어지고 정리된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의 표현 역시 그에 합당한 것이어야 하는데 시쳇말로 막가파식이어서 아쉽다. 더구나 그 지식이 한가운데 서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는 침묵하는 다수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나치를 들먹거릴 자격도 없다. 나치의 중심사상을 게르만 독일 민족의 지상주의에 따른 이민족 유대민족에 대한 것이었지 우리처럼 6·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이 아니었다. 더구나 나치 독일은 지금 이미 통일과 함께 유대와 화합을 이룩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통일은 커녕 언제 동족 상잔이 재연될지 모르는 대치 상태에 놓여있다.

또 정부를 색깔론으로 비방하던 일부 정치인들이 덩달아 이 나치로 침을 튀기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反)나치스파가 바로 공산당이었다는 사실은 스스로 그 색깔론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정치인들의 적절치 못한 역사 인식과 그 맹종이야말로 무면허 조타수에게 키를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 허구의 세계까지도 섣부른 정치적 잣대로 싸잡아 곡학아세 운운하는 것도 난형난제였다. 권력은 언론사에 있지 않고 정부에 있다. 아첨을 하려면 정부에 붙지 초상집 언론사 편을 들까. 주석에서 기자에게 사주의 지시로 기사를 쓰느냐고 면박을 한 것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언론의 자유 역시 다양성으로 표현되는데 거의 한목소리만 내고 있었다는 데에도 문제는 있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두 사람의 논쟁이 다시 ‘대동아공영권’으로 재연되었다.

추씨가 먼저 이씨 글에서는 역사와 정의를 찾아 볼 수가 없으며 또 이씨가 침략과 정신대 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제의 표어 대동아공영권을 경제 블록과 연결시키고 있어 어이가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추씨가 전체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내글의 일부만 끊어서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외세만 아니었으면 대동아의 공존 공영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고 응수했다.

먼저 묻고 싶다. 그때 과연 우리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그때는 1910년 8월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이 이미 멸망하고 우리 민족이 망국의 한을 안고 있을 때였다. 나라는 없어도 대동아 공영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인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이르는 이 대동아라는 말과 함께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신조어가 일본 내각에서 채택되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전후인 1941년 12월부터였다. 그리고 교활한 일본이 주도한 대동아의 공존공영과 신질서 건설을 선언한 대동아회의가 도오쿄에서 개최된 것은 그 2년 후인 1943년 11월이었고, 참석자는 일본의 도오조 히데키와 친일 일변도인 중국의 왕자오밍, 만주의 장징후이, 필리핀의 라우젤, 태국의 왕와이다야콘, 버마의 바모 수상 등이었다. 이미 망국 상태에 있던 우리나라는 그나마도 이 제국회의(諸國會議)에 참석할 자격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학병제를 실시, 대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하기 시작한 것은 그 2개월 후인 이듬해 44년 1월부터였고, 다시 ‘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포, 수십만에 이르는 12~40세의 미혼 여성을 군 위안부와 군수공장에 취로케 한 것 역시 그해 8월부터였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도 일본이 주도한 그 대동아 공영이 가능할 수가 있었으며 또 만약 그 대동아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났어도 우리 나라의 광복이 가능할 수가 있었을까. 이 답변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로 미룬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그런데 모 일간지에 객원논설위원으로 있는 어느 교수가 정의의 여신 디케를 들먹이며 국회의사당 앞에다 추씨의 여인상을 세우면 어떨까 하고 한쪽 편을 들었다. 그는 디케의 두 볼엔 내면의 추악을 부끄러워하는 양심의 수줍음이 진홍빛처럼 녹아난다고 하였는데, 내면이 그토록 추악한 디케가 어찌 정의의 여신이 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는 디케를 더 이상 정의를 상징할 수 없는 추악한 여신으로 추락시켰고 또 정의가 약자의 진실이고 약자의 침묵이 토해내는 향기라고 법학교수로서의 그 자질을 의심케 하기도 했다.

정의는 정의일 뿐이다. 정의가 한가운데 서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는 그것은 이미 정의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일제 때 모 일간지 사설이 학병제와 여자정신대근로령을 정당화시키고 부추긴 것은 정의란 말인가. 그것이 정의라면 국회의사당 앞에다 추씨보다는 그 기념비를 세우고 그 사설을 비문으로 새겨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동안 언론사가 이 나라 정신문화에 기여한 공이 크고 특히 신춘문예는 우리 문인들의 영욕의 장이 되어 왔다. 필자 역시 80년대 초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2회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1회 등 모두 3회를 최종심에서 세 사람 가운데 끼어 샌드위치가 되었지만, 추씨와는 정반대로 언론사가 우리 문인들에게 좀더 문화를 개방하고 좀더 지면을 할애해 주었으면 한다. 여기서 문인들은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고 그때 곡학아세의 시비도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두 사람 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일진데 어찌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으랴. 물론 그들이 한 가운데 서지 못한 아쉬움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화해의 손을 내밀고 그것이 다시 정부와 언론사로 이어져 화합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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