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8월 23일을 기하여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ctary Fund) 차입금 1백95억달러 중 미상환금 1억4천만달러 전액을 상환키로 함에 따라 1997년 12월 3일 경제주권의 항복 이후 3년 8개월만에 경제주권을 완전히 되찾게 됐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국가들 중 IMF 차관을 앞당겨 갚는 등 외환 유동성측면에서 여유를 보이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인 것은 분명하다.

외환보유고 1천억달러에 가깝고 대외채권이 채무액을 웃도는 순채권국으로 전환된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애써 과소평가하는 것은 온당한 시각이 아님을 반증하는 사례들이다.

나라는 정쟁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정부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어 무엇하나 제대로 풀려가는게 없는 무덥고 답답한 시기에 모처럼 전해진 낭보(朗報)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국가경영의 리더쉽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환란(煥亂) 직후의 절망적인 상황을 돌이켜 보면 국가적인 자부심을 가질만한 것이며 위기극복을 주도한 국민의 정부도 내외의 갈채를 받을만한 쾌거였다.

IMF 빚은 다 갚았지만 IMF 사태의 불안과 위축은 가시기 어려운게 현 상황이다.

지난번 경제주권 상실 때는 대선을 앞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안 및 위기관리 능력부족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볼 때 오늘의 각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불안도 겪고 기우일 수만은 없다. 내년의 두차례 선거를 앞두고 때이르게 열기를 더해가는 정쟁, 이념적 갈등, 집단이기주의, 언론사 세무조사 등 복잡한 현안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얼마나 부담을 안길지? 특히 봄철의 지방선거와 초겨울의 대선을 경제위기속에 치르는 일은 없겠지만 경제가 뒷전으로 밀려서는 엄청난 후유증이 되풀이 되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국제통화기금(IMF) 설립을 처음 시안(試案)한 사람은 영국재무부자문관(1919-1946)이기도 했던 존 메이너트케인즈(J. M. Kcynes 1883-1949)였다. 케인즈는 카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자본론을 수정발전시킨 일반이론(1936출간)이 무르익을 즈음 미국 재무부 고문이었던 해리하이트(Harry Dwhite)도 비슷한 제안을 발표했다.

이 두사람이 미국과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 해갔고 초안이 만들어 진 것은 1942년이었다. ‘세계중앙은행’을 생각했던 이들의 구상은 케인즈의 제안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44년이고, IMF 협정은 1945년에 발효됐다.

국제질서는 역시 ‘이긴 자’의 몫이다. 승자들의 전후처리에 따라 이루어진 IMF는 지분출자액에 따라 실질적인 운영권은 미국이 장악하고 지식재산권이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입장을 고려해 ‘총재’ 만큼은 유럽이 맡아왔다. 미셀 캉드쉬에 이어 독일의 흐르스트 필러가 IMF 총재를 맡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지난 1997년 한국인들 앞에서 그토록 강력한 이미지로 등장했던 IMF는 이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간 다소 눈에 거슬리는 듯한 캉드쉬 총재나 머리를 짧게 깎은 휴버트 나리스 단장이 이끄는 대표단과 한국 정부가 밀고 당겼던 협상장면 보도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꼭 짚고 싶은 것은 IMF 대표단과의 협상 뒤에는 실세로 미국 재무부 차관보였던 데이비드 립튼이 극비리에 서울에 잠입해서 협상을 막후 지휘했던 일이 보도되었을 때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끝으로 필자는 경제주권을 상실했던 1997년 12월 3일 전 2개월동안 5대 일간지와 3대 경제지를 샅샅이 뒤졌으나 어느 언론사도, 어느 경제학자도, 어느 원로지식인도, 어느 정치인도 경제국난에 대하여 일언반구의 조언이나 충고문을 보지 못했다. 이 치욕의 원천은 우리 모두의 정신문화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데 있다고 단언한다.

‘과거’에의 분노가 갈수록 높아져 급기야는 자기 정체성까지를 부정하려는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요즘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이나 청와대만 쳐다보는 행정부부터 정신차려야 할 것이며 국정이 레임덕을 자초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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