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일부 외국인들은 한국의 학생에 대한 추천서를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면 ‘상기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며...’라는 식으로 된 추천서에 사인만 해 준다는 것이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서 한국의 선생들이 써주는 추천서에 신뢰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표면적인 이유이다.

객관적으로 그 학생을 평가하여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이 우수한지를 명료하게 기술해주는 추천서를 접할 기회가 적다고 이들은 불평한다. 외국인들의 이러한 말속에 ‘좋은 것만 평가하고 취약점은 평가해주지 않는, 좋은게 좋다’는 식의 한국의 평가문화가 한마디로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평가의 객관적 수준을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평가문화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부 회계법인들이 모 대기업의 부실채무를 분식회계방식으로 사실과 다르게 감사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본다. 이들 회계법인들은 채권단으로부터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인즉,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이들 회계법인들에 의하여 작성된 대차대조표, 시산표, 재무제표 등 연말 경영 실적들을 참고하여 대출을 집행, 엄청난 금융 손실을 보거나 채권 회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금액이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허위로 작성된 재무제표 등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해주지 않고서 작성된 회계감사보고서를 믿은 관계로 채권자들은 채권 및 금융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부실한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게 되어 큰 손실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회계법인들의 분식회계 등 부실 회계 감사로 인하여 신뢰의 훼손을 당한 한국의 경제가 입은 보이지 않은 손실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회계법인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좋은 평가의 문화를 제대로 배워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 민족은 정에 약한 민족이다. 정을 주는데는 두 번 가라면 서러워 할 민족이다. 그러나 세계의 경제질서 속에서는 정의 문화가 갖고 있는 취약점이 노출되기 십상이다. 정의 문화는 주관성에 치우친 문화로 흐를 수 있다. 그래서 공정한 평가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좋은 평가는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 객관성에 근거하지 않으면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없다. 억압적 정치체제를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서 거쳐오는 동안에 한국에서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문화가 은연중에 자리잡아 왔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어떤 문제에 대하여 평가를 하더라고 이를 믿지 않고 딴 죽을 걸거나 평가와는 전혀 다른 근거를 기준으로 문제를 보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평가를 잘 믿지 않는 문화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평가의 문화가 취약한 구조를 한국의 사회가 유지하는 한 한국의 건전한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건강한 나라의 경제 구조를 가지려면 우리사회가 생각을 바꿔서 객관성에 근거한 평가의 문화를 견지해야 한다.

신용평가기관들이 어떤 기업의 신용 평가를 하향 시켰을 때 이들이 반발하는 모습을 본적은 있지만, 미국의 회사들이 신용 평가기관들에 의해서 보다 낮은 평가를 접했을 때 반발하는 기사를 읽어 본 기억은 없다. 평가문화를 제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사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평가를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 충분한 자료접근의 보장, 불편 부당성, 공익추구정신이 폭넓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 회계법인들의 처신에 대하여 그들 자신의 변명을 들어보면 다음 감사를 자기 회계법인에 맡기지 않겠다는 엄포를 이기기 힘들어서 의뢰 회사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 그대로 변명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러한 압력을 회계법인에게 넣고, 회계법인들이 같은 이유로 이 말에 따라서 적자는 축소해주고, 흑자는 몇 배를 부풀려서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이를 회계감사를 하는 주체들이 그대로 눈감아 준다면 다시금 우리의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은 부실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런

평가문화는 지금 고쳐야 한다. 평가문화를 우리가 재정립해가지 않는다면 우리민족은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서 패배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실패를 딛고 건강한 경제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모든 부문에서 평가를 객관적이고 있는 그대로 함은 물론,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기의 직업 영역에서 정확한 평가의식을 가지고 생활해 가는 것이 우리의 사회를 진보하게 해주고 남과 다른 직업조직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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