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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생합니다 - 4<기획연재 - 여순10·19의 기억 1-4 >

* 여순사건 피해 유족인 황순경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구 술 자 : 황순경(1939년생, 81세, 당시 9세) - 現 여수유족회 회장

작가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우리 내동부락에서 그 미평 굴다리가 있는 언덕배기까지는 딱 10리였습니다. 내동 마을을 나올 때 먼 고락산에서는 한여름 밤 내내 울던 소쩍새 중 늦장 부리며 월동지로 날아가지 못한 몇 마리만 남아 뜸하게 소쩍거렸을 테고, 가파른 맨드래미 고개를 넘을 때는 길옆 풀숲에서 귀뚜라미며,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잠들었던 놈들은 후두둑 급하게 날아올랐을 것입니다. 퇴근 길 곤욕을 치르고서도 몸이 조금이라도 더 성했던 길잡이를 해야 했던 친척 형의 숨소리가 가쁘게 가을밤 공기를 덥혔고, 역원 형을 부축하면서도 제일 앞장 서서 자꾸 발을 헛딛고, 휘청거리는 어머니까지 챙겨야 했던 작은아버지의 숨결은 더 거칠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어째야 쓰까, 어째야 쓰까. 괜찮을 것이여. 괜찮을 것이여.󰡓

󰡒순채 아부지, 제발 덕분에 우리 아들 좀 지켜주시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요. 제발 덕분에…….󰡓

수도 없이 읊조리는 어머니 소리는 가을 밤 정적을 깨는 한 마리 벌레의 처절한 울음소리 같았을 것입니다. 자꾸 허방을 딛는 발길은 여느 절지동물의 그것만큼이나 앙상하게 흔들렸을 테고.

철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행여라도 형이 살아서 기어오고 있을까 싶어 길섶을 살피느라 걸음은 더 느려지고, 하현달의 위치는 저만큼 기울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알갛게 익어가는 맹감나무 덩굴 가시에 긁히며, 열매를 달고 쇠기 시작한 엉겅퀴에 쓸리면서도 아무것도 느낄 겨를이 없었고, 그저 입속으로 중얼대며 기도에만 정신을 쏟을 뿐이었겠지요. 길잡이를 했던 친척 역원이 발걸음을 늦춘 곳에 도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냄새와 소리로 이미 형님이 누운 자리를 가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날것이, 살았던 것이 상해갈 때 그 몸 안의 것들을 쏟아내며 죽음의 단계를 밟아갈 때 나는 냄새는 그것이 비록 생애 처음 맡는 것이라 해도 그 죽음이라는 이물감을 어찌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거기다 팽팽하게 긴장된 신경줄을 타듯이 주위의 작은 분해자들, 죽음에서 또 다른 생명을 얻어내는 생명체들이 내는 미세한 소리들이 폐부를 찌르며 몸 안을 채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의 울음이 터졌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의 어머니는 금쪽같은 아들을, 아니 아들의 죽음을 두 손으로 붙잡아 느낀 그 순간, 멈춘 숨과 함께 복받치는 울음을 꽁꽁 접어 넣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가신 지 3년밖에 안 되었는데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지고, 발 디딜 땅이 꺼졌을 테지요. 거기에 오늘은 이미 혈육을 떠나보내는 고통에 가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던 날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죽음과 대면한 순간 어머니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부끄러움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어머니가 가만히 내뱉던 그 말을 저는 싫어합니다. 부끄럽다니……. 그래서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니…….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스스로의 전생이나 이전의 업보 때문이니 그 부덕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하더이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는…… 그래요. 부끄러우셨을 수도 있겠네요. 다른 이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은 잃어버렸으니.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만 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을 테니. 텅텅 비어가는 결핍된 존재, 훼손되고 불완전한 존재는 부끄러워지겠지요.

소리조차 낼 수 없었겠지요. 밤이 깊었고, 어디서 14연대에서 이탈한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밀지, 진압하려고 온 군인이 덮칠지, 일정 때부터 무섭지 않았던 적이 없던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지 알 수가 없으니까. 꺽꺽 울음을 참으며 가라앉을 듯 무거운 정적 속에서 서둘렀겠지요.

그 십리 길을 어떻게 돌아오셨을까요? 젊고 원통한 죽음을 부여안고 맨드래미재를 넘을 때 그 고갯길에는 걸음걸음 맨드래미빛 서러움이 찍혔을 테지요. 고통스러운 삶의 비애를 짊어졌으니, 그깟 십리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 세상 그 무엇이 느껴졌겠나 싶지만. 몸의 감각이 마비되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려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해도 그 애통함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어머니는 형님의 기일이 되면 이날의 기억을 딱 한 마디로만 합니다. 그때 친척 어른들 참 못할 고생했다고. 지금 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형도 평균이 넘는 키에, 운동이라면 빠지지 않을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였습니다. 삶의 마지막 무게들이 실린 축 늘어진 몸을 부둥켜 안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여한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했을 어른들에게 늘 죄스럽다고 했지요.

(다음 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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