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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10
송은정 작가

아버지는 작은아버지 식구를 보내고 한동안 더 무기력해지셨다. 작은아버지는 자식들을 대동하고, 손자들을 앞세운 채 초월한 듯 인자한 미소를 띠며 좌편향 우편향의 흔들림을 고요하게 멈추곤 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누구보다 기복 심하고 치열하게 살아낸 동생이 자식들을 통해 그의 삶을 증명하려는 것을 아버지는 고개를 깊게 끄덕여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돌아누워 입을 다무셨다. 나는 감염이 강한 아버지의 그 무언의 시위를 모른 척 하려 애썼다.

매일 불을 지폈다. 봉화라도 올리듯이 연기를 피워 올렸다. 나를 공격할 적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위급해지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신호라도 보내듯이. 방안에서만 피우는 난롯불이 소식을 전할 리 만무하지만 스스로를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화기를 유지해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유난히 춥지 않은 겨울을 나면서도 매일 난로를 달구는 것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몸을 돌리시지만 별 말씀은 없다. 내가 난로에 집어넣을 삭정이들을 모아오기 위해 매일 뒷산이라도 오른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그나마 안심하시는 눈치다. 종일 웅크리고 궁싯거리는 것이 일인 아들이 몸을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그럴 것이며, 게다가 종잡을 수 없는 아들과 부딪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기까지 하니 나쁠 것이 없으셨나 보다. 무엇보다 불에 대한 향수, 인류의 조상들이 불을 발견한 이래 축적시켜 온 불에 대한 그 향수를, 아버지 역시 떨칠 수는 없으신지 모른다. 타닥타닥 불꽃으로 소진해가는 것들의 소리만이 집 안을 채운다.

나는 불 곁에서 책장을 넘긴다. 보도사진으로 유명한 뉴욕 라이프지의 칼 마이던스 기자가 찍은 여순사건의 기록들이다. 어린 아버지들이 목격했을 그 시간들 속을 헤매며 나는 아버지의 입을 다물게 한 것들, 내게 유전되는 무력증의 단서를 수집한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만큼 굳게 입을 다문다.

'peaceful heaven', 평화로운 천국. 그 기자가 순천을 칭한 반어적 표현이다. 사진에 담긴 당시의 여수와 순천은 평화로운 천국이나 아름다운 수역과 정확하게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칼 마이던스의 기고문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전하기 위한 역설들로 점철되어 있다. 사진과 함께 형상화된 1948년 10월 시원한 가을밤은 피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냉전은 뜨거워졌다는 말장난 같은 실상들. 반군들이라 칭한 이들이 여전히 미군복을 입고 있었으니 싸움의 두 파벌은 하나의 유니폼을 입고 같은 미군 차량을 타고 동일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 모르는 충성스런 군대는 여자와 아이들의 충성심까지 심사했다. 충성스런 군인들의 ‘질문’이 피비린내 나는 사형선고로 이어지고, 질문은 곧 추궁과 폭력이 되어갔다. 충성스런 군대는 카빈 총 개머리판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의 얼굴을 강타하고 머리를 박살냈다. 서로의 잔혹함을 또 다른 잔혹함으로 갚았다고 한다.

탁 탁 타닥. 사진첩에 실린 당시 잡지 속 깨알만한 글자들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서 읽는 답답함과 역설투성이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거대한 모순들이, 꺼져가는 난로의 연기와 함께 목을 조여 왔다.

턱. 내동댕이치듯 소리 나게 책을 내려두고 장작을 가지러 나간다. 오후 해거름에 겨울 뒷산을 오르면 땔감투성이다. 사진 속에 들어있던 유난히 야트막해 보이고, 검불하나 없이 깨끗하게 헐벗은 산들이 떠올라 슬프다.

한 아름의 장작을 안고 들어오니 아버지가 책을 보고 계신다. 아랫도리 속옷 하나만 걸치고 무릎 꿇고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사람들. 기도하듯 모은 손을 쳐 입과 코를 박살내고 이를 바숴버리며 자백을 받아내려는 경찰. 제방 아래로 기괴하게 굴러 떨어져 논밭에 나뒹구는 시신들. 존엄한 생명체였다는 어떠한 표식도 잃어버린 길가에 쓰레기처럼 함부로 나뒹굴고 있는 시신들. 부풀어 올라 쌓인 시신들을 보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손도 대지 못한 채 먼발치서 가슴을 치는 가족들, 그리고 조용해진 뒤에야 찾아와 마주한 주검 앞에서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 이 세상 가장 날카로운 통성을 뿜어내는 여인들. 아버지의 숨소리가 커진다.

순천농림고등학교 운동장에 무더기 무더기 선별되어 앉아있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이 불길하고, 여수서초등학교 운동장은 이불보따리까지 이고지고 피난 짐을 싸서 내몰려 불려나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손목을 뒤로 묶인 채 줄줄이 수송차에 실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너무나도 젊은 장정들. 아버지는 한 장 한 장을 넘기고 계셨다. 그리고 멈춘다. 팬티만 남은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벌을 서듯 손을 들고 있는 남자들과 그들 등에 난 몽둥이 자국을 오랫동안 응시하신다. 한참 만에 넘긴 종이 뒤로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며 하소연 하는 남자가 보이자 아버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신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크게 한숨을 쉬며 넘긴 다음 장에는 두 남자의 뒷모습이 실렸다. 군복 왼 소매에 십자 표시가 그려진 흰 완장을 차고 모자에 흰 띠를 두른, 튼튼한 군화를 신은 남자가 총 개머리판으로 앞 사람을 짐승 몰 듯 후려치며 몰아가고 있다. 쫓기듯 한 발을 막 떼며 두 손을 번쩍 든 사람은 속옷 차림에 맨발이다. 강하게 뻗어 올린 팔과 드러난 어깨에 배긴 노동의 근육은 거칠 것 없는 젊음의 저항을 가득 돋아 올리고 있었지만 급하게 떼는 발은 학교 뒤편 구덩이, 사지를 향하고 있다. 다급하게 발걸음을 떼어 향해야 할 곳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발은 총부리에 밀려 속수무책 너무나도 허겁지겁 그 사지로 몰려가고 있다.

“으으으, 으아악!”

쫙쫙 좌악!

아버지가 울부짖는다. 발작하듯 책을 찢어댄다. 쫙쫙, 조각조각, 계속 소리를 지르신다. 가슴을 두드리신다. 나는 너무 뜻밖이어서 안절부절 못한다.

“이 미친놈의 자식아! 이것들이 뭐여? 뭐라고 이런 것을 쳐 보고 자빠졌는 것이여! 니가 왜 이딴 것을 보느냔 말이여!”

이제껏 이런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75년이 넘도록 무력함 그 자체였을 것 같던 아버지였다. 그동안 표출되지 못한 무언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듯 분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목줄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래 이제 속이 시원하냐? 이 짐승만도 못한 애비 꼴을 보는 것이! 이것이 사람이냐! 발가벗고 벌을 서는 꼴들이!”

아버지가 난로 뚜껑을 여시고는 찢은 것들을 집어넣는다. 연기와 재가 피어오른다.

“맨발로 죽으러 쫓겨 가는 꼴을 보니 좋냐는 말이다! 에이 순 개 같은 놈의 세상!”

불꽃이 벌겋게 되살아나려는 순간 풀썩, 아버지는 책을 통째로 난로에 집어 던지신다. 숨을 씩씩거리시는 아버지의 짙무른 눈가에 물기가 흥건하다. 아버지나 나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분출이다. 등을 획 돌리시더니 그만큼의 황망한 걸음걸이로 나가버리신다.

펄럭, 종이 한 장이 들썩인다.

“그러는 동안 그 광경을 여자들과 아이들이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괴로운 체험 가운데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방관자들의 침묵과 자신들을 잡아온 사람들 앞에 꿇어앉은 사람들의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모습 - 그리고 총살되기 위해 끌려가면서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마디의 항변조차 없었고, 동정을 바라는 울부짖음도 없었고 신의 구원을 바라는 어떤 중얼거림도 없었다. 또다시 이런 세기가 그들에게 주어진다면, 어찌해야 좋을 것인가?”

칼 마이던스의 글 한 구절이 무겁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데스크  yeo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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