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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에 묻은 말들 2 - (채록 소설)기획 연재 3 – 여순10·19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기원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1948년 10월 문수골로 찾아든 군인들

어머니 가슴에 들어앉은 불같은 화 덩어리 좀 식어가나 싶었다. 가을걷이로 먹을 것이 넉넉해진 산골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가을 산색을 닮은 석양이 낙엽을 물들이고 산새들 깃을 치며 수풀로 찾아드는 해 질 녘. 10월 24일쯤 되었을 이날 저녁은 굴뚝 연기만 낮게 감돌던 때와는 달랐다. 둥지로 돌아가는 산새들, 집집 마당을 왁자하게 채운 이들의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로 맴돌았다. 가마솥 뚜껑이 경쾌한 무쇠 쓸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허연 김이 오른다. 열린 솥에서 똠박똠박 썰어 넣은 고구마와 함께 뜸이 든 밥이 구수한 내음을 풍기며 10월 말 석양빛의 온기를 지켰다.

10월 19일 여수에서 봉기한 제14연대 일행은 유격전을 펼치려 20일 순천을 지나 지리산 등지를 목표로 이동해 왔다. 봉기군은 23일 순천 서면 학구에서 진압군에 밀려 퇴각하고, 23일, 24일에 걸쳐 구례로 들어온다. 14연대 봉기군이 백운산과 지리산을 가로지르는 섬진강을 지나 문수골 골짜기 깊숙한 상죽마을을 지난다. (진화위 보고서)

집집마다 군인들이 찾아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밥을 차리느라 부산했다.

삽화 / 이이룸

아버지가 저기 뭐이냐, 이장을 했는가 뭣을 했는가 했는디. 처음에는 반란군(14연대 봉기군)들이 들어왔어. 근디 그 사람들 밥을 해줬어. 추석이 지난 가실인께 고구마를 이렇게 똠박똠박 썰어 넣어 밥을 해서, 그전에는 이런 대야도 없고 그렁께 나무 함박에다 퍼서 담아준 것을 봤어.

방에는 안 들어오고 마당에 이렇게 모여 앉아 있고 그랬어. 방에 못 들어와 사람이 많아서. 여러 집에 있었어. 집집마다 (14연대)군인들이 가 있었어. 아조 야물게 숨어버린 집은 안 들어가도 안 숨고 있는 집에는 들어갔어. 집집마다 다 있었어.

아마, 아버지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군인 몇을 이끌고 앞장서 집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는 아직 아들이 한 명은 남아있었을 때 만큼의 당당함을 되찾았다. 아버지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군인과 몇 마디를 나눈 이후로 사립문이 활짝 열렸다. 긴장한 것인지, 군인다운 절도 때문인지 줄지어 들어온 사람들은 단단해 보였다.

단단한 젊은 군인들은 마당 뜰방에 노란 설탕 포대를 착착 쌓았다. 헛간 구석에 쇳소리를 내는 무언가를 은밀하게 들이고, 가마니를 덮었다. 아이들 울음과 웃음이 끊긴 집 구석구석으로 무언가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군인들이 밥상도 없이 삼삼오오 멍석에 앉아 밥만 얻어먹고 떠난 여느 집들과는 달리 우리 집 마당에는 밤 깊도록 화톳불이 피어올랐다.

뜰방에 노랑 설탕 가마니도 요렇게 막 쟁여져 있고, 글고 또 총탄알 요리(어깨에 걸쳐) 매는 것, 그것도 막 까대기에 있고. 뜰방에 이렇게 쟁여져 있었어, 그 설탕이. 옛날에 우리들이 그 노랑 설탕을 밥그릇에 담아서 막 떠먹고 다녔어.

10월 22일 불법으로 계엄령이 내려지고 제12연대는 순천을 경유하여 구례로 이동해 봉기군 포위작전을 전개했다. 10월 28일 백인엽 부연대장이 지휘하는 제12연대 2대대와 3대대가 구례에 집결해 봉기군을 추격한다. 11월 1일까지 화엄사·노고단·심원·와율리와 삼정리를 거쳐 화개장으로 진출하여 수색을 진행했다. 1대대와 하사관 교육대(연대장 백인기 중령)는 구례에 주둔했다고 하고, 제3연대는 10월 28일, 노고단 중턱 토지면 문수리로 진격해 약 2시간 교전 끝에 점령하였다. 제3연대는 반군이 사령부로 사용하던 문수국민학교와 문수리 일대를 수색했다.(진화위 보고서)

28일부터 문수계곡에는 같은 군복이지만 다른 눈빛의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총소리와 함께 군인들이 우루루 산마을로 오르자 마을에 들었던 봉기군들은 지고 온 짐들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바삐 떠났다. 마을 사람 중에도 솜옷 몇 벌 챙겨 따라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바가지 모자 쓴 사람들이 수도 없이 겁나게 오고 있었다. 온 동네 여기도 있고, 저기도 막 흩어져 들어왔다.

아버지도 같이 산으로 향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았다 해도. 집안에는 봉기군들이 수습해가지 못한 짐이 쌓여있어 발뺌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아버지로서는 이런 곳에 늙은 어머니와 가슴에 대못 박고 사는 아내와 어린 딸을 남기고, 혼자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가 다르게 해가 짧아지고, 곧 서리가 내릴 텐데 우리 모두와 함께 지리산 깊은 골로 들 수도 없었을 테고.

우선 몸을 숨겨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들이닥친 군인들이 마을을 에워싸서 마을 밖으로의 피신은 불가능해졌다.

군인들은 곧장 총을 쏘며 집에 있는 사람들을 내몰아 동네 앞 논배미로 모이게 했다.

군인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다 나오라 하면서 저기 논배미로 싹 데리고 갔잖아. 막 총을 탕탕 쏘면서 겁을 주고 그랬는데. 군인들이 집 수색하려고 그랬나 봐. 집 수색하려고 싹 나오라면서 데리고 나갔어. 엄마랑 할머니도 논배미로 데리고 갔어. 나하고 아버지하고 둘이 집에 있다가 아버지 그런 걸 봤지 내가. (다음 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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