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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에 묻은 말들 3기획 연재 3 – 여순10·19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기원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아버지 그렇게 죽일 줄 알았가니?

그때만 해도 안방에는 제법 큰 뒤주가 있었으니 먹을 만큼 살았던가 보다. 맵시라고는 없는 시커먼 쌀 뒤주였지만 제법 컸고, 쌀도 반 넘게 들어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급하게 아버지를 그 속으로 밀어 넣었다. 몸을 숨길 곳이 그곳밖에 없었을 터이다. 미처 다른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어머니와 할머니는 떠밀려 논배미로 나갔다. 뒤따르려는 나를 어머니가 엄한 눈길로 손사래를 치며 집에 있으라 하셨다. 홀로 남겨진 나는 듬성듬성 난 뒤주의 틈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마루로 나앉았다.

길을 헛짚으며 허둥대는 마을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햇살이 드는 쪽 마루에 주저앉아 습관적으로 마룻장 나무 관솔이 떨어져 나간 구멍에 손가락으로 넣어 헤집어댔다. 손가락으로는 서걱거리는 부스러기들을 느끼며, 눈으로는 뜰방에 쌓인 설탕 가마니 주변으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오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온 신경은 안방 뒤주에 쏠려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가지 모자를 쓴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내가 봤어. 그때 우리 아버지를 바가지 모자 쓰고 온 사람들이 총으로 탁 쏘드만. 쌀 뒤주 안에 숨어 있는 아버지를 군인들이 찾아내서 마당에다 끌어내 놓고 총으로 쏴 버렸잖아. 아버지를. 여기(왼쪽 미간)를 쏴서 총알이 여기(오른쪽 귀 앞 위쪽)로 나왔어. 째깐해서 봐도 알겠어. 시방도. 그래 피가 막……. 저 산중에는 마당이 편평하지 않고, 높았다 낮았다 그러잖아. 피가 이렇게 졸졸 내려가는 것을 다 보고 그랬어.

바로 돌아가셨어. 그 뒤주에서 끌어내다가 바로 마당에 내다 놓고 쏴버렸다니까. 바가지 모자 쓴 사람들이 그랬어.

삽화 - 이이룸

어르신 보는 앞에서 총을 쐈어요?

봤지. 마루에서 봤어.

아버지 살려달라고 이야기를 해보시지는 않으셨어요?

안 했어.

무서워서 안 했어요?

아니, 뭐 죽일 줄 알았가니? 난데없이 총을 딱 쏴 버렸지. 아버지를 죽인다고 말을 해 뭣을 해. 아무 말 없이 총으로 탁 쏴버려. 뒤주에서 끄집어내 마당에 데려다 놓고.

열 살 때면 굉장히 무서웠을 텐데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무섭죠. 말 못 해. 국이 끓는가 장이 끓는가, 뭐 어쩐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총을 쏴 가지고 총탄이 이리 나온 것만 봤지. 아버지는 피만 쏟고. 얼마나 놀랐을까잉. 세상에.

아버지는 말씀 한자리도 못 하시고 돌아가셨겠네요?

항 소리도 없지 하믄. 말 한자리도, 꽥도 못하고 돌아가셨어.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버렸어. 아버지가 그래도 옛날에 일본에 이만한 가방 들고 갔다 왔다 해쌌는 것도 알고 그런디. 그 아버지 살아계시면 일본에 가서 살았을지도 모르는디. 일본에서 살림하다가 도로 나오셔서 돌아가셨는갑서.

봉기군들이 가마니 가마니 쟁여놓은 것들을 그냥 놔두고 가버렸는데. 그런 것이 막 쟁여져 있으니까 물어보지도 않고 쏴 버린 거여. 그런 것 같애. 내 째깐한 아이 짐작에도.

후회스러운 일뿐

나보고 왜 말려보지 않았느냐고? 몰랐다.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몸을 던져 막아내고,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을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수도 없이 곱씹어 봤다. 다른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 이후, 지금껏 나는 나를 자꾸 멍청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말하게 된다.

후회스러운 일뿐이다.

차라리 작은아버지 집처럼 14연대 군인들이 들이닥치던 그때부터 일찌감치 대청마루 밑으로라도 온 식구가 숨어버렸다면 좋았을걸. 그렇게 해서 작은집 권속은 하나도 안 죽고 다 살아났는데.

아니, 우리도 아버지 숨기고서 뒤주에 쇳통(자물쇠)을 잠가뒀어야 했다. 나중에 보니 그렇게 숨긴 사람은 살아남았다고 했으니까. 뭐든 하려면 야물게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아버지가 더 당당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지 않은가. 그런다 해도 죽음에서 아버지를 구할 수는 없었을 것만 같지만……. (다음 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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