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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자리송은정 문학소설 -1

세상 어딘가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길도 있었구나.

그를 따라나선 길 이십 리. 앞서가는 지아비 등을 바라보며 그가 디딘 발자국을 되밟아 가는 구비구비 길이 먼 줄도 몰랐다.

아, 하얀 벚꽃길 따라 돌모랭이를 돌아가면 이다지 다른 세상이 나타나기도 하는구나.

나풀거리던 나비와 꽃잎비가 여울에 가볍게 내려앉아 퍼트리는 동심원에서부터 뭐든 낮고 둥글게 계속되는 이런 곳도 있는 거구나. 골짜기를 이루며 모이는 능선자락들은 봉분들을 업고 잔잔한 물결마냥 출렁이고 있었다.

 

"세상에나, 나비잠 자듯이 다 누워있네."

 

야트막하니 비탈진 산자락 따라 자기만의 오목한 하늘을 가진 골짜기. 여린 벚꽃잎을 띄운 개여울에서부터 산자락 경계들까지 아지랑이 따라 부드럽게 풀어졌다. 가릴 것 없어, 골짜기로 봄 햇살이 가득차 눈 앞이 환해진다.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거리감이 사라진다. 그곳 세상은 서로에게 손만 뻗으면 금방 가 닿을 수 있을 듯하다.

 

"묫동들이 그렇게도 편안해 보인단가?"

 

앞서 걷던 지아비가 설핏 웃으며 대구한 소리가 골짜기에 울린다.

골짜기는 작은 숨소리마저도 오목한 하늘아래서 공명시켜 바람에 실어 띄워 올렸다. 지아비와 나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무엇보다 봄바람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나는 소리들이 허공을 맴돌며 아늑한 그 세상 어디에도 가 닿았다.

의례 그래야 한다는 듯 까마귀들이 봉분 위를 낮게 선회했다. 까마귀는 산자락 끝 하늘을 끌어내리고 골짜기 안 능선들 안에서 비행하며 그 세상의 경계를 또렷이 했다. 다만 그 날것의 새까만 빛깔은, 빛을 받아 오색 윤이 나고 있었음에도, 그 세상에 유일한 그림자가 되었다. 날것들의 비행길을 따라 땅에 그림자들이 스르륵 스쳐지난다.

모든 것이 안온했다. 먼 길을 떠나와 도달한 이곳에 지아비와 나 둘뿐이다. 가슴은 제멋대로 뛰어대는데, 마음이 턱 놓인다.

 

지아비와 나의 첫 원행이다.

 

자신을 있게 한 조상님께 나를 인사시키려는 모양이다. 이제 난 저이의 배필이 되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혼령들에게도 분명히 해 둘 사실이다. 내 자리를 마련해주는 지아비의 속깊음이 고마웠다. 별말 없이 앞장서는 그 사람의 뒤로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오늘 그의 뒤를 따른 만큼 지아비에게 더 다가간다. 지아비가 보여준 등과 침묵만큼 나는 그이를 더 알 것 같다.

지아비와 거리가 벌어지는 것이 싫었지만 난 멈춰서 진달래를 아름 꺾는다. 생가지를 부러뜨리는 일이란 좀처럼 없었지만 지금은 미안함 없이 꽃을 맺고 있는 가지들로 골라 꺾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종 한 되라도 받아왔어야 했다. 먼 길을 걷는다고 단출하게 가자했어도 보따리 한 짐쯤이야 괜찮았을 터인데. 그저 어딘가로 같이 가자는 말에 정신 못 차리고 무작정 따라나선 나 자신이 우습다. 진달래 꽃물이 내 볼로 옮겨든다. 멈춰서 가만히 나를 기다리는 지아비의 눈길에 꽃물은 목을 따라 뚝뚝 떨어지고, 나는 꽃물들어 꽃색으로 달아오른다.

 

그이는 가장 높은 열에 줄지어선 묘 중 한 곳에 멈춘다.

그 봉분 곁엔 비워둔 자리가 있었다.

비어있는 채로 어딘가를 차지할 수도 있구나.

지아비는 묘를 돌면서 제멋대로 웃자란 풀 몇 가닥을 뽑아낸 후 그 앞에 앉아 담배를 꺼낸다. 불을 붙여 봉분 앞에 놓아두고 등을 돌려 먼 아래로 눈길을 보낸다. 한줄기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엔 보랏빛 제비꽃이 듬성듬성하다. 그 곁에 진달래 꽃무더기를 내려놓고 친정에서 배운 대로 네 번 절을 올린다. 둥글기와 크기, 찾아올 길이며, 주변 풍경도 다 닮아있는 이 수 많은 봉분들. 다음에 올 때는 어떻게 찾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표식할 만한 것이라고는 조금 넓게 빈 터가 있다는 것뿐이다.

다음에 뒤따라 올 때는 뒤안에 노랗게 피어난 수선화 몇 포기 옮겨와 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보여."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지아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바람은 여전히 지아비와 나의 나풀거리는 것들을 가볍게 띄워 올리고. 작년 삼월 삼짇날 혼례를 올리고, 일 년 해를 묵히는 중인 지아비와 나는 합방 날을 며칠 남기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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